우정이란 이름
ㅡ'우리들의 블루스' 를 보고ㅡ
일곱 명의 고교 동창 친구들 모임이 있다. 30년지기 친구들이 다시 만난 건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고 3이 된 아이들의 정보도 주고받고 대학에 들어가고 군에 입대하고 졸업후 사회 생활 하는 아이들까지 상황들이 비슷해 공유할 얘깃거리가 많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경조사도 함께 위로하고 여러모로 힘들 때 즐거울 때 함께 해온지 10년이 넘어간다. 일단 첫 장거리 부산 여행을 하면서 가까워졌고 제주. 여수. 삼척. 속초. 평창. 안면도 등 곳곳을 누비며 함께 다니며 서로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일곱 친구이지만 다르기에 더 재밌고 서로 맞춰가며 큰 갈등 없이 늘 옆에 함께 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면서도 예측 불허한 친구들이다.
'우리들의 블루스' 란 드라마에선 은희와 미란의 우정을 여느 친구들과 다르게 독특하게 그려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미란이가 제주에 내려온다는 소식에 순간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미란이는 고교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퀸이고 친구들에겐 공주였다. 의리로 뭉친 은희와 미란이는 친한 친구지만 보이지 않는 간극이 있다. 고교시절 부잣집 딸인 미란이 덕분에 승용차로 등교 하고 도시락까지 싸다주던 든든한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은희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만들고 집안의 어려운 사정으로 중퇴 후 검정고시를 도와준 친구도 미란이었다. 은희는 평생 은인으로 여기며 미란에게 의리를 다짐한다. 사랑을 다 쏟았지만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는 미란에게 상처 입은 자기 마음을 내색하지 않는다.
자신을 한없이 돋보이게 하는 은희가 손발이 되어주며 무수리를 자처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 하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만만한 친구라고 여긴다. 언제나 자기 편인줄만 알았던 은희의 속내는 미란이를 이기적이고 배신자에 이중인격자라고 여겼다. 미란의 태도도 화가 났지만 겉으로 의리가 있는 척 속내를 속이고 가면을 쓴 은희도 이해하기 힘들다. 상처 입은 속내를 털어놓던지 과감히 관계를 끊던지 싫으면서 끌려다는 건 억지스럽다. 미란이에게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채로 친구를 대하는 것은 진실하지 못 하다. 은희와 미란이처럼 속내를 서로 속이면서 친한 척 의리 있는 척 한다면 모래성처럼 그 관계는 무너진다.
유학중인 딸과 졸업여행을 꿈꾼 미란은 자신만 빼고 가족 여행을 간 딸에게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 친구에게 위로받고 싶었는데 일기에 담긴 솔직한 친구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어땠을까. 배신감이 컸을까. 자신을 돌아보게 됐을까. 빚을 갚기 위해 친구로 남아있겠다고 결심한 은희나 친구 부인과 싸울 때 자신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친구 뺨을 때린 미란의 갈등은 고조되고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만 남기고 둘의 우정은 깨진다.
사람은 빈자리를 느낄 때 알게 된다. 옆에 있을 것 같은 가족이 없을 때나 내편일 것 같은 친구가 없을 때 빈자리가 크다는걸 뒤늦게 느낀다. 은희와 미란이도 서로 등돌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았다. 갈등을 겪은 후엔 더 단단한 우정이 된다. 두 친구 사이의 갈등의 매듭이 잘 풀려 다행이지만 이번 계기로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지 않을까.
우정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일기장처럼 쉽게 버려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참 복잡미묘하다. 미움과 증오를 풀고나면 연민과 사랑이 생긴다. 진정한 우정은 만나면 즐거우면서도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이다. 기쁠 때 슬플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고 울어주고 위로해주는 사이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칭찬에 서툴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위로에 인색하다면 왠지 서운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친구 사이이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이 아닌 친구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어야 한다. 흉어물 없는 사이이기에 만나면 그냥 좋고 이해타산적 관계가 이니기에 편하다. 상처를 주거나 비교하면서도 우정이란 이름으로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친한 지인이 어느 날 친구 모임을 다녀온 뒤에 친구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그 날 상가 건물을 산 친구와 아버지 유산을 받은 친구의 얘기를 듣고도 더치페이 하는 두 친구들이 너무 인정 없어 보였다고 했다. 더치페이는 당연하게 여겼던 일이고 다른 친구들에겐 기분 좋게 잘 쏘는 지인인데도 돈 자랑이나 하지 말던지 하며 그 날은 유난히 빈정이 상해서 돌아왔다며 속내를 내비쳤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서도 아니고 평소에도 자랑만 늘어놓으며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여 그 날따라 괜한 서운함이 들었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의 경우 경조사를 치르거나 축하받을 일이 생기면 간단한 식사나 커피를 산다. 작은 행동에서 마음이 묻어 나오는 것처럼 서로 챙겨주는 그 마음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아버지 장례 치르고 고맙다고 아들 입사 기념으로 친구들에게 점심을 살 때면 기분이 참 좋다. 마음 씀씀이는 물질을 어떻게 쓰느냐에서 나타난다.
나이들수록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우리 친구들의 만남이 그러하다. 서로 위하고 소소히 챙겨주는 작지만 큰 마음이 우리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고 언제든 달려와주는 든든한 천군만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