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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j Aug 27. 2024

연민

ㅡ드라마 '연인'ㅡ


병자호란때 붙잡혀 볼모로 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서 8년간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해답을 보여준 작품이 최근 끝난 '연인' 이란 드라마이다.  유일하게 시청했던 드라마로 주말이 기다려질 정도였는데 끝나니 참 아쉬웠다.


자꾸 엇나간 사랑도 안타깝지만 볼모로 잡혀가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소현세자 부부와 조선 백성들의 삶을 실감나게 그려내서 보는내내 참담했다.


 제목을 '연인' 이 아닌 '연민' 으로 바꿔야 될 것 같았다. 두 주인공 장현과 길채의 절절한 사랑을 연인이란 주제로 녹아냈다면 인질로 끌려가 청나라에서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조선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버텨낸 소현세자 부부와 조선 백성들의 삶은 연민 그 자체였다. 나라와 시대를 잘 못 만난 불운. 살아남기 위해 몸무림치기 위한 절망. 그럼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갖고 견디는 처연한 모습까지.


 조선의 입장에서 전란을 헤쳐나가면서 삼전도의 굴욕까지 당한 인조가 청나라에게 계속 간섭받으면서 분노와 수치심이 어느 정도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청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정치적으로도 영민해서 청과 우호적 관계를 맺은 것까지 모두 못 마땅해 하며 결정적으로 청나라 문물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주장에 인조의 분노가 폭발에 아들과 며느리. 자손들까지 비정하게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서 살아온 백성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드라마나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청나라에 살면서 남자들은 노비로 궂은 일을 다 해내면서 도망하다 잡히면 발 뒤꿈치를 잘라 절름발이로 만들어 다시는 도망가지 못 하게 만들고 여자들은 사고 팔리며 노리개가 되고 시중을 드는 하녀로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거기에 척박한 땅을 개간해 농사까지 지으며 청나라에 곡물을 바치면서도 배를 곯지 않거나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꿋꿋히 버텨낸 처절하지만 강인한 삶을 이어온 조선 백성들이다. 청인들은 척박한 땅에서 수확에 성공한 조선인들의 부지런함과 끈기에 혀를 내둘렀다. 풍성히 익어간 곡식을 추수하며 신명나는 우리 민요를 부르는 백성들을 지겨보던 소현세자가

 "나는 추수 때 백성들이 저런 노래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무지하게 궁에서 책만 읽었구나."

라는 자조섞인 말에서 백성과 한 마음이 된 세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분명 백성을 사랑하고 외교에도 능하고 청에 대한 분노만이 아닌 실리적 이익을 추구하며 안정과 평안으로 조선을 이끈 깨어있는 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농사를 성공적으로 이끈데는 소현세자 비인 강빈의 내조도 한몫을 했다. 곡식으로 무역까지 해서 재산을 불려 그 재산으로 조선 백성들을 살피고 관원들의 목숨까지 살렸다고 전해졌다. 그렇게 영민한 세자와 세자비. 세손들에게 조선이 한 악행이란.


 이렇게 강하게 버텨낸 소현세자 부부와 백성들이 조선에 돌아와 받은 대우를 보면 조선의 무능함에 화가 치민다. 여자들은 유교 정절 운운하며 화냥년이란 조롱과 무시. 학대를 받으며 비참한 대우를 받고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집안에서 쫒겨나고 목숨을 끊고 남자들은 노예로 살며 몸이 다 망가진채 병들고 백성을 지켜내려고 애쓰다가 돌아와선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 소현세자 부부를 생각하면.


 자신의 피해의식과 망상을 떠나서 부자간의 관계로만 아들 부부의 처지를 연민으로 바라봤다면 아비로서 그런 잔혹한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조선에 금의환향을 받으며 돌아오자마자 두 달만에 학질이란 병명으로 급사한 소현세자는 의문의 죽음이라고 쳐도 며느리에게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손자들을 유배지로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보면 인조가 피해의식과 망상이 낳은 참혹한 결과였다. 소현세자가 백성들과 대신들에게 신임을 얻고 청이 세자에게 양위 종용을 명령할까 불안에 떨며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까봐. 치떨리는 수치를 당한 인조에게 청의 문물을 받아드려야 된다는 말에 살기등등해진 인조의 광기는 결국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을 죽게 만든 인면수심이 참혹하기만 하다.


 그 주제를 다룬 영화가 '올빼미' 라는 영화였고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영화도 흥행해서 영화를 보고나서 쓴 '인조의 피해의식과 광기' 라는 제목의 감상글도 써두었다.


 인조는 왜 연민의 정이 없었을까. 자신이 당한 수치와 피해만 생각하느라 자식과  백성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청나라 황제에게 고개 숙여 사죄한 왕이라는 수치가 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자기애와 자기 연민만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 처지나 상황을 바라보지 못 한다. 자신만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상처나 수치심을 다른 사람을 끌어들여 책임을 전가하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욕심많은 애첩인 조씨에 휘둘린 무능한 왕이기까지 했다.


 전쟁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광해 임금을 반정으로 몰아내고 왕이 된 자신이 광해군의 중립정책을 무시하고 청나라를 배척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았나.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직접 전쟁에 나가 싸우기도 하고 전란을 수습하며 왕으로서 자격이 충분한 임금이었다. 중립정책으로 명과 청 사이에서 실리를 지킨 외교를 펼치며 대동법을 실시해 백성들의 안위까지 바라며 정치한 영민한 왕이었는데 인조반정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병자호란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음에 연민만 남는다. 안타깝게도 역사는 만약이 없다. 단지 그랬다면 어땠을까 바랄 뿐이다.


 역사에 평생 기록되는 왕들이 후대에 부끄러운 행동을 한 왕으로 기록되지 않게 백성을 살피고 애민정신을 가졌다면

최소한 헛된 죽음을 당한 이들이 없었을 거란 안타까움만 남는다. 어떤 왕이 나라를 다스리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남은 회차와 결말이 궁금한 드라마를 오래간만에 만났기에 마지막회를 간절히 기다렸다. 세자 부부의 비참한 결말을 알아 해피엔딩이 될 순 없지만 길채와 장현의 사랑이라도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려져 아픈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기를 바라면서 마지막회를 시청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멋진 결말로 이어졌다.


인조의 죽음이나 소용 조씨의 사필귀정인 말로나 백발이 된 랑음. 능군리로 돌아간 마을 사람들. 이후의 삶을 시간상 세밀하게 담아내진 못했지만 기억을 잃었어도 길채와 한 약속은 잊지 않고 바닷가에서 마주하며 두 사람이 해후하는 마지막 장면과

 "기다렸지. 아주 오래. 여기서"

라고 애잔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장현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완성도가 높은데다 음악과 영상미까지 더해져 아름다운 결말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므흣하고 만족케 했다.


 배우 남궁민이 연기한 이장현은 소현세자를 옆에서 보필한 실존 인물이며 그의 연기가 호평일색이라 벌써부터 연말 대상 수상이 예견되고 있다고 한다. 전부터 좋아하는 배우라 그의 연기에 푹 빠져있었던 몇 달 동안의 주말이 기다려지고 행복했는데 끝나서 정말 아쉽다.


 우리의 아픈 역사와 조선 백성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연민. 아름다운 로맨스가 잘 어우러져 감동을 준 잊지 못할 드라마가 되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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