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꿈꾸는 인생

ㅡ'나의 해방일지'ㅡ

by oj


“나를 추앙해요” 라는 다소 생소한 말로 호기심을 자극한 ‘나의 해방일지’ 는 '나의 아저씨'처럼 짠한 드라마였다. 추앙이란 높이 받들어 우러러본다는 뜻이지만 자주 쓰는 말은 아닌데 드라마에서 나온 뒤 한 동안 유행처럼 번졌다. 여주인공의 낮은 자존감과 자신이 처한 버거운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외침으로 들렸다. ‘나의 아저씨’를 쓴 유명한 박해영 작가라서 그런지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법한 어둡고 우울한 이들의 이야기와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잘 표현했다.


농사일에 늘 바쁜 부모님과 서울로 출퇴근하는 세 남매의 지친 일상과 업무 스트레스는 삶에 지친 이들이 자기 얘기처럼 공감했다. 장거리로 출퇴근 하며 회사 업무도 힘든데 하루 쉬는 주말에는 부모님의 바쁜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유일하게 쉬는 시간은 식사 시간뿐이다. 유난히 밥 먹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밥 먹을 때조차 대화 하나 없이 각자 밥만 먹으면 다시 일어나 기계처럼 일했다. 정을 나누는 애틋한 가족이라기 보단 의무적인 관계에 지나치게 무뚝뚝하고 고단함이 묻어나 보였다.


세 남매의 해방은 오직 집을 탈출해 자유롭고 편안히 사는 것이다. 집이 먼 탓에 늦은 시간이면 꼭 셋이 만나 같이 택시 타면 가장 좋고 시간이 맞지 않아 지하철을 타면 다시 마을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한참을 와야 한다. 그런 이유로 첫째의 해방은 서울에서 사는 것이고 둘째의 해방은 차를 사는 것이고 막내의 해방은 자신을 추앙해줄 누군가를 찾는 것이다. 서서히 세 남매의 해방이 이루어질 때쯤 부모님의 해방이 궁금했다.


싱크대 작업일과 밭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해방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밥 신이 많은 것을 보면 엄마의 해방은 밥 짓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했을 장면이다. 실제로 후반에서 엄마가 “지겹다. 지겹다”로 신세 한탄 하신다. 안타깝게도 밥 짓는 일에서 마침내 해방되시는데 그것은 가출도 이혼도 아닌 갑작스런 심정지라는 사실이 짠하도록 마음 아팠다.


밥은 생존이자 자양분이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밥만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참 서글프다. 인생이 너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낙도 없이 사느라 바쁘고 지쳐 자신은 돌아보지도 못한 채 행복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신 엄마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가족들은 전보다 더 무표정해졌고 누군가는 밥과 설거지를 누군가는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고 밭일은 쌓여만 갔다. 아버지는 나중에 고백한다. 자신이 가족을 건사한 게 아니고 가족들이 자신을 건사했다고...아버지는 가족을 건사하는 무거운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없어 자신과 가족들을 다그치신 것이다. 그런 무거운 책임감에서 평생 해방되긴 어렵다는 사실을 가장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 같아 아버지 마음도 이해가 됐다.

엄마의 부재는 타버린 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밥을 먹어야 힘을 얻지만 누군가의 수고 없이 대가족의 식사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수고가 당연한 것이 아닌 엄마의 수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는 과로사 했을 거라고 말하는 큰 딸은 해방을 더 간절히 원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오래된 밥솥’이란 윤혜령 작가의 단편소설에서도 엄마의 부재를 밥으로 표현했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엄마의 차진 밥은 어느 새 진 밥, 식은 밥, 오래된 밥이 되어버렸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엄마의 밥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느꼈을 때 엄마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엄마의 차진 밥은 엄마의 괴로움과 외로움의 압력으로 지어진 밥이라는 사실을 딸은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했을 뿐이라고 자조섞인 후회를 한다.


80세 되신 우리 엄마도 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엄마에게 평생 밥은 가장 중요한 생명의 양식이고 자식들을 지키는 길이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시절 배곯지 않는 것이 삶의 목적이셨던 엄마로선 당연한 일이였는지 모른다. 쌀가마를 보며 안심하고 정성스레 지은 밥에 흐뭇해하셨으니 밥은 엄마에게 안식이었으리라.


아버지 살아계실 때 밥 짓는 일이 지겹다고 하시면서도 밥 지을 때 자의식을 갖고 존재 이유를 느끼셨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연로해지셔서 전혀 음식을 못하시고 자식들이 지은 밥을 드시며 흐뭇해하실 때면 세월 앞에선 장사 없다고 느낀다. 엄마가 해준 음식들이 그립고 아직까지도 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가 가끔은 답답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지어주고 맛있게 먹는 걸 볼 때면 엄마의 흡족한 마음을 떠올린다.


엄마라면 밥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다. 요즘 밀키트가 많이 등장하면서 식사 준비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지만 끓이고 차리고 설거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수고가 동반된다. 밥은 곧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어서 일까. 식사는 하셨는지 묻는 것은 우리의 인사법이고 밥 한 번 먹자는 친근함의 표현이 되었다.


요즘 나의 해방은 무엇일까. 두 아이들이 입사하면서 독립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자립해 큰 걱정을 덜었다.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을 때 턱관절, 족적근막염 등이 찾아왔다. 이젠 몹시 불편한 질병에서 해방되고 싶다.


남편에게 지금 해방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미 해방 되었는데 무슨 해방이 더 필요하냐는 시원스런 답변이 돌아왔다. 25년 근무한 회사에서 7년 전에 명퇴해 1년간 쉬다가 다시 재취업에 성공하면서 몸도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월급이 작아도 아직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일단 경제적 여유도 해방의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누군가는 남편과 가족의 뒤치다꺼리에서 누군가는 밥에서 누군가는 불편한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는 질병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현실은 해방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영 해방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해방이라는 목표를 갖고 스스로 만든 구속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며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또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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