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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Feb 04. 2021

백호은침

21.01.31

오늘은 날이 좋아서 백차(白茶)인 백호은침을 꺼냈다.
백호은침의 백호는 흰 호랑이가 아니라 흰 털을 의미 한다.
또, 은빛 바늘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전자에 차를 우리면 찻잎이 바늘처럼 곧게 서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린싹으로 만든다 해서 찻잎이 작을 줄 알았는데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커서 놀랐다.  
차는 60도의 낮은 온도의 물로 2~3분 정도 우려낸다. 다른 백차는 우려냈을 때 연한 노란빛이라 그냥 녹차보다 색이 옅으니 백차라고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백호은침은 아주 옅은 샴페인 같은 색을 띠었다. 그제야 괜히 백차라고 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한 모금 마셔보니 꽃 향기 같기도 하고 딱딱한 복숭아의 달콤하고 풋풋한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듯했다. 우리면 우릴수록 색이나 향이 더 진해진다. 떫은맛은 거의 없고 끝 맛은 달콤했다.
차도 사과처럼 시간이 지나면 변색된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차는 물론 물의 온도에 따라서도 색이 다르게 우러나온다. 녹차의 경우 낮은 온도에서 우리면 청량한 초록색, 높은 온도로 우리면 연녹색을 띠기도 한다. 하지만 색이 변한다고 해도 이상하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백호은침은 차가 식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차를 우리고 몇 시간이 지나면 처음 우려냈을 때의 화사한 색은 온데간데없고 굉장히 탁한 색을 띤다. 차가 식으면 그 맛이 덜해지기는 하지만 식욕도 함께 사라지는 색이었다. 그러니 차는 따듯할 때 빨리 마셔야 한다. 그래서 중국 찻잔이 그렇게 앙증맞은 크기였나 보다.

곧게 서있는 찻잎을 보니 생각나는 게 어디서 들었는데 일본은 차를 마실  찻잎이 곧게 서면 길조라는 미신이 있더랬다.

그럼 거기 사람은 백호은침을 마시면 되겠다 싶었다. 백호은침은 중국차라 해당이 안되려나?

미신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 들어 틈만 나면 유튜브로 타로 운세를 본다.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운세 보는 건 재밌기 때문이다. 가끔 뭔가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을 들으면  신나서 계속 듣게 된다.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모순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운세 결과를  믿는 건 아니다. 특히  될 거라는 운세는  안 믿는 편이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고 보통 운세에 관해서는 이런 말이 뒤따른다. 운세는 운세일  본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그럼 결국 모든 건 본인의 노력인 것이지 운세 덕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 용하면 좋아질 뻔했지만 당신의 게으른 천성 때문에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고 나오던가, 취업운이 있으면 이력서 하나만 넣어도 한 번에 딱딱 붙고 말이야. 내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됐어야지! 하는 글러먹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런 태도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행인 건 내가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게 다행이다. 그냥  될 거라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좋아지는 .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운세로 빌려 듣는 것뿐이다. 이러나저러나 될 사람은 되고 안될 사람은 안 되겠지. 그래도 나는 될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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