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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Apr 25. 2022

곡우 뒤에 마신 세작

2022.04.22

곡우(穀雨)가 지났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올 것처럼 날이 흐렸다 말았다 한다.

원래는 곡우 전에 수확해서 만들었다 해서 붙여진 우전 녹차를 마시려고 했지만 좀 더 아껴두려고 세작을 마시기로 했다.

24절기 중 곡우는 봄의 마지막 절기. 한국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봄비가 내리고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농사철의 시작이다. 

입춘, 경칩이 지나면 추위가 사그라들고, 처서가 지나자마자 시원해지는 것처럼 딱딱 들어맞으면 과연 조상님들의 지혜란 하며 감탄했는데, 기후 변화로 때 아닌 이른 시기에 피는 꽃들이 생겼다는 이야길 들으면 나중엔 절기도 의미를 잃어버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렸을 때 학교에서 나눠주는 환경 일기장에 일기를 썼던 기억이 있다. 뭘 썼었는지 내용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에도 환경 보호의 중요성은 분명 예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빙하가 녹고 있고, 오존층이 파괴되고 있다고. 시간이 흘러서 현재 환경파괴로 인한 문제점은 예전보다 훨씬 피부로 더 와닿는 느낌이다. 

플라스틱이 쌓여 섬이 되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열대우림은 파괴되고.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북극곰들을 비롯해서 서식지를 잃어가고 멸종하는 많은 동물들이 안타까운 현실인데, 당장 내 주변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딸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꿀벌이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그 많던 명태는 모두 어디로 갔나. 더 이상 동태찌개, 명란젓, 코다리 강정은 우리의 식탁에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젠 오징어도요.' 같은 말을 하는 날은 그야말로 디스토피아 세계가 따로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때가 온다고 해도 딸기나 명태나 오징어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비싸서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기후변화 관련 강연을 들었다. 거기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기후위기로 겪게 될 약자들의 삶이었다. 기온이 상승하게 되면 가뭄, 홍수, 태풍이 증가한다고 한다. 태풍 뭐 여름이면 매번 발생하는 거 아니야? 싶겠지만 영화 기생충에서 똑같이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주인공 일가의 반지하는 물에 잠겼지만 부잣집은 딱히 피해를 입은 것이 없었다. 현실도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분명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몸이 불편하거나 오갈 데가 없어 자연재해가 발생해도 쉽게 거처를 옮기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사회 복지 시스템쯤 없어도 내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 할 만큼 내가 부자가 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현재 보통의 삶을 산다 할지라도 언제든 약자의 자리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장담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 한 명이 환경에 신경 쓴다고 얼마나 영향이 있겠어?라고 하기보다 나도 환경 보호에 동참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비닐봉지가 쌓이는 게 싫어서 비닐봉지는 받지 않고 에코백을 장바구니로 쓰는 등 얼떨결에 환경보호 중의 몇 가지를 실천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환경 보호는 뭐가 더 있을까. 고기보다는 채식 위주로, 텀블러 사용하기, 분리수거 잘하기, 재활용 하기 등등. 예전엔 샴푸가 다 떨어져서 마트에 가면 항상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새 제품이 아니라 리필 팩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통이 없어도 되는 샴푸바를 사용하고 있다. 

무언가를 소비할 때 내가 같이 소비하게 될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지도 고민하기로 했다. 


 

예전에 마셨던 우전과 세작. 우전은 우리고 난 찻잎을 살짝 양념을 해서 먹어도 맛있다(우전은 비싸기 때문에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이렇게 해먹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시도해보았다)

  다시 처음의 녹차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전과 세작은 1~2주의 수확시기의 차로 맛이 다르다. 엽저(우려낸 찻잎)만 봐도 색깔이나 크기가 다르다. 확실히 우전의 엽저가 더 작고 연하다. 그래서 우전의 엽저는 간을 해서 먹기도 한다고 한다 간장과 식초 참기름만 한 두 방울 쪼륵 넣고 섞으면 입가심하기 좋은 나물 반찬이 된다. 물론 양이 많지 않아 한 젓가락 분량이다. 그래도 우전 못지않게 세작도 맛있다. 녹차의 달콤하고 풋풋한 냄새는 새 순이 만연한 초록빛 녹차밭을 떠올리게 한다. 


 5월이 되면 입하가 곧이다. 짧은 봄이 끝나고 여름을 맞이할 때. 아직은 봄을 더 만끽하고 싶었는데 벚꽃은 이미 다 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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