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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Mar 22. 2022

바질 토마토 케이크와 얼그레이

2022.03.21

사실을 알고도 그걸 부정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토마토는 과일이고 수박이나 딸기는 채소라는 걸.


내 머릿속에 채소란 양념해서 절여먹고, 볶아먹고, 구워 먹고, 튀겨먹고 아무튼 식사에 쓰이는 식물의 잎, 줄기, 뿌리 그리고 '열매'등. 과일은 새콤하거나 달콤해서 그대로 먹거나 디저트로 곁들여 먹는 열매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수박이나 딸기를 채소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딸기를 양파 마늘을 넣고 볶아서 소금 후추로 간을 해서 파스타 면을 넣고 볶는다거나 하는 상상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토마토는 과일은 내 머릿속의 토마토는 채소에 더 가깝다(과일은 과일인데 식사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과채류'로 분류된다고도 한다) 생크림 케이크 위에 생으로 올라온 방울토마토는 개인적으론 가지나 생감자, 생 오이 같은 게 케이크 위에 올라와있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채소는 곡류나 과일을 제외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초본성 식물.

과일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그래서 딸기나 수박은 덩굴 식물의 열매라 채소로 분류된다고 한다.

분류 기준은 어디까지나 식물학적 기준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먹는지와는 상관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긴 설탕에 절인 토마토는 정말 맛있다. 생 토마토가 아니라 차라리 설탕에 절인 토마토를 케이크 위에 올리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마토의 단짝은 바질. 예전에 오렌지 바질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맛있었다. 바질 토마토 케이크..? 괜찮은데? 그렇게 해서 집에 굴러다니던 토마토청을 그대로 갈아 잼을 만들기 시작했다.

설탕을 넣고 소금 간을 조금 했다. 나는 토마토 주스에도 소금 간을 해 먹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었다. 소금이 제일 잘 어울리는 과일. 그것은 토마토일 거야.


바질은 크림에 넣을까 케이크 시트에 넣을까 고민이 되었다. 왠지 바질을 크림에 넣으면 잼을 올렸을 때 케이크만 따로 놀 것 같았다. 그래서 케이크 시트 기본 반죽에 바질 가루를 5그람 정도 곱게 갈아 넣었다. 처음에 섞을 땐 색깔이 좀 이상한 거 같았는데 굽고 나니 쑥색이 나서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자존심은 쉽게 토마토와 생크림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토마토나 바질은 그냥 생크림보다는 산미가 있는 크림치즈가 어울릴 듯했다.

케이크 시트 - 크림치즈 프로스팅 - 토마토 잼 순서로 쌓아서 완성한 케이크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매일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번 생각날정도.


케이크와 함께 선물 받은 포트넘 앤 메이슨의 얼그레이를 마셨다. 굉장히 깔끔하고 향긋하다. 영국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영국이 떠오르는 클래식한 맛이었다.


먹다 보니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당근 케이크도 있고 베이컨 아스파라거스가 들어간 파운드케이크도 맛있었지. 아보카도도 과일인데 양념해서 요리한 게 맛있기도 하고. 파인애플이 올라간 하와이안 피자도 맛있지!

내가 너무 단어에 꽂혀서 가능성을 배제하고 사고가 편협해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중요한 건 채소든 과일이든 그 맛을 살려서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데. 앞으론 나무보다는 숲, 좀 더 멀리 보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데코레이팅 실력은 도무지 늘지 않는다. 올 해는 아직 바질을 파종하지 않아 로즈메리와 애플민트를 따다 케이크 위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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