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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Jan 26. 2023

인간의 제1원칙, 이기심

이기심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

인간은 살아가며 정말 많은 계산과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살아간다. 유명 철학자들과 심리학계 거장 등 인간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하는 이들은 어김없이 인간의 삶에 있어 선택이 갖는 중요도를 끊임없이 언급한다. 인간이 갖는 모든 판단들은 천차만별의 다른 가치들을 저울에 올려놓고 판단하지만 그 모든 판단의 근원적인 목적은 자신의 ‘생존’이다. 자신이라는 개체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두고 모든 판단들이 이뤄지기에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기심을 지니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얻을 기회가 다른 이에게는 매 순간 생사가 오가는 외줄 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중대한 기회이더라도 철저히 이성적이라면 자신이 그 기회를 가져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얻어낸 기회 덕분에 자신은 이후 새로운 위기가 닥치더라도 이전에 쟁취했던 기회 덕분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더라도 그 행동이 내 피로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서슴없이 행하게 될 것이다. 자칫 피로가 쌓였다가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인간은 과거에 이기심에 의해 무수히 많은 동족을 짓밟고 살아남은 자들의 역사가 있다. 같은 종이라는 소속 따윈 단일 개체, 자기 자신의 생존 앞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걸 충분히 보고 배워왔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해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아버린 순간부터 인간은 다른 개체를 위해 힘쓰는 일보다는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철저하게 책임지는 것이 유전자에 각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일거리를 늘리는 것부터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위해 더 큰 부담을 안겨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소중한 어느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들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에만 이기심 탓에 생겨나는 인간 사이의 흔히 일어나는 비극으로 해석할 수 있고, 정작 해를 끼친 당사자에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방어기제로 인식되고, 당하는 사람조차 피할 수 없는 참고 버텨야 하는 상황, 혹은 자신의 성장을 통해 이겨내야 하는 난관 정도로만 인식된다. 그 상황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마주하게 된 발판이 아니라 단순히 타인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만들어낸 상황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이성을 금세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이기심은 타인을 위하는 행하는 행동에서도 동일하게 작용된다. 이성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만족감, 혹은 소유욕을 위해 그 대상에게서 사랑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이기심이 이성을 가린다. 상대방은 이미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이기심이 작용하는 한 자신이 하는 행위가 그 사람에게 어떤 피해와 곤란함을 주더라도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이런 행위는 이성이 다시금 주도권을 되찾아 이기심을 밀어내고 날 때야 겨우 멈출 수 있다. 일상적인 상황이라면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운 줄 깨달은 상황일 것이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설이 막 지난 김에 명절을 비유로 들자면 어린아이들과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하는 근황에 대한 물음을 가장한 훈수들도 이와 같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성적, 진로, 취직, 결혼 등에 대한 압박들은 모두 어른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혈연으로 맺어져 있는 사람들이 높은 능력과 지위를 갖게 된다면 일차원적으로는 ‘나는 이런 친척을 두고 있다’는 인맥 과시를 통한 부러움을 살 수 있고, 혹은 ‘내가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이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존에 도움이 될 수단이 되기에 정작 당사자는 바라지도 않는 온갖 사랑을 가장한 채찍질이 행해지는 것이다. 너무 비약이 심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면 바꿔서 생각해 보자. 어차피 그 사람이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모르는 사람이라면, 혹은 그 사람이 나와 가까운 관계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 깐깐한 인간이라면. 과연 그 사람이 잘 되길 빌어줄까?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게 될 경우 나에게도 일부분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사람이 잘 되는 게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란 이기적인 생각이 사람을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무의식조차 이겨내는 경우들이 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부모, 신념을 위해 한 몸 불사르고 죽은 위인, 돈을 위해 육체의 한계까지 밀어붙이다 과로로 숨진 사람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들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신념을 사랑했으며, 물질을 사랑해 버린 사람들이다. 사랑이 사람에게 깃드는 순간부터는 그것에 대한 모든 이성적 판단에 오류가 발생하게 되며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이기심도 판단을 함에 있어 한참 후순위로 밀려버린다. 문명을 수백 년 간 지탱해 온 종교들이 모두 사랑을 강조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 탓이다. 문명의 발전이 더뎌 모두의 생존을 위해 개인들의 희생과 협동심이 불필요했기에, 주변인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집단을 사랑하며,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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