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삶을 버티는 법
변수를 대하는 이상적인 태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이를 위한 계획을 갖고 준비하며 나아가려 하더라도 인지하지 못했던 온갖 장애물들과 미숙한 자신이 만들어 낸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런 위기는 단순히 일의 진행에 차질만 빚을 뿐 아니라 여태까지 자신을 받쳐주던 신념까지도 흔들리게 만들고, 때론 완전히 무너뜨려버리기도 한다.
실수와 실패가 무서운 이유는 이처럼 의지와 열정 자체를 송두리 흔들어버리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믿음과 다시 일어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에 더욱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기 한 번도 겪지 않고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신념과 목표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를 이뤄내겠다는 집념만큼 강력한 삶의 동기는 없다. 그것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혹은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던가, 특정 무리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영향력을 발휘해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던, 또는 단순히 자신의 성장만을 목표로 살아가던 그것은 필수적이다.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삶을 이어간다. 그저 살아있어서 살뿐이다.
변수는 어차피 이 세계 위에 살아가는 이상 반드시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위해 신념과 목표를 지켜내야 한다면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행동은 정해져 있다. 완고함과 수용, 이 두 가지다.
완고함은 외부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한다. 흔히 '심지가 없다'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이런 완고함이 없어 자신의 방향이 없고, 주변 환경의 영향에 따라만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그 탓에 환경이 급격히 변화해 버리면 크게 혼란을 겪기도 하고, 적응에 완전히 실패해버리기도 한다. 또한 완고함이 전무한 사람은 일정함 없이 어떻게 뒤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타인으로써는 믿고 의지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에 인간관계에 있어 끈끈한 신뢰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완고함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신념과 목표를, 이상을 지속적으로 좇을 수 있도록 하는 삶의 필수요소다.
반면 수용은 삶에 유연함을 선물한다. 너무 단단한 나뭇가지는 버틸 수 있는 이상의 힘에는 금세 부러져버리지만 유연함을 가진 나뭇가지는 부러지기 이전에 굽힐 줄도 알고, 굽혔다가도 탄성력으로 금세 다시 자신의 형태를 되찾을 수도 있다. 수용을 할 줄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나간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도 있음을 늘 인지하고 다른 의견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그중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골라 흡수해 낸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아는 게 쉬운 일 같지만 전혀 아니다.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자신의 의견이, 생각이 부정당한다면 이것은 곧 나의 신념과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처럼 다가오는 일이 종종 있다. 종교와 정치 등의 이야기를 조심히 다뤄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방향이 완전히 다른 이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한쪽을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반대쪽은 모든 것을 부정당하는 셈이 되기 쉽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이 이런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하면 자신의 삶과 신념이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수용하는 태도가 자리 잡은 사람은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도 반대편의 이야기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점들을 적극적으로 듣고 이해하려 한다. 둘로 나눠진 세계가 있다면 고작 반쪽짜리 세계에서 답을 찾기보단 두 세계 모두에서 답을 찾는 편이 더욱 온전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건 당연지사다.
완고함과 수용은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수 없어 보이는 성분 같지만 두 가지 모두 함께 지녀야만 한다. 완고함만 가진 사람은 타인의 말은 쥐뿔도 듣지 않는 고집만 센 인간으로 보이고, 수용만 지닌 사람은 자기 줏대는 하나도 없이 주변사람들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팔랑귀 인간이 된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지녀야 한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인 후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되었다면 상황에 따라 어느 것을 얼마나 활용해야 현명한 판단인지 자신만의 기준이 자리 잡게 된다. 그 비율이 어느 정도여야 자신의 성격과 삶의 방향에 적절한지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직접 느껴보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어려운 길이지만, 어쨌건 양쪽 다 담아야 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고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완전과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어떤 고통이라도 감수하고 이뤄냈으면 하는 것이 욕심 많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다면 불안정한 현재 상태에 좌절하고, 무력감을 느끼며 널브러져 있기보단 한시라도 빨리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