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어른스럽게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법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이야기다. 고슴도치들이 있다. 이 고슴도치들은 추위에 떨며 온기를 나누기 위해 서로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고슴도치들이 가진 가시 때문에 너무 가까워지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게 된다. 가시에 통증을 느낀 고슴도치들은 도망치듯 멀어졌다가도, 또다시 추위 때문에 서로 뭉치려 한다.
나는 이 우화가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의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정말 좋아한다. 우리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도 서로의 가시에 찔릴까 봐 두려워 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멀찍이 물러서서 추위에 떤다. 혹은 추위를 피해 서로 붙어 온기를 나누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해 서로의 가시에 찔려 멀찍이 떨어져 버리곤 한다. 아마 우리에게 가시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빚어지는 마찰이나, 실수로 인해 상대방에게 상처 입히는 일들일 것이다. 혹은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일도 가시일 수 있다.
과거에는 추위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 서로에게 금방 다가갔다가 찔려서 도망가는 일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점차 가시에 찔릴 일을 먼저 두려워해서 계속해서 추위에 떠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지금 당장의 추위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훨씬 큰 상처로 남아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홀로 추위를 이겨내려 몸을 더 웅크리고, 자신의 온기만을 느낀다.
그렇다면 이 고슴도치 같은 우리들은 고통 없이 온기만 느낄 순 없는 걸까? 정답은 앞의 우화 속에 있다. 고슴도치들은 계속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다가 서로의 가시에는 찔리지 않고 적당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찾는다. 다만 고슴도치의 수가 적어서는 충분하게 추위를 피할 수 없기에, 가능한 한 많은 수의 고슴도치들이 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자리 잡는다. 이는 사람들에게도 똑같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로 너무 가깝지도, 추위 속에 홀러 떨 정도로 너무 멀지도 않은 정도의 적당한 거리감으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커뮤니티가 이상적인 고슴도치들의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단 한 사람에게서만 온전한 온기를 얻으려면 반드시 상처를 입기 마련이니, 한 사람에게서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의 외로움만 해소를 하고 그러한 관계를 여럿으로 늘려 자신의 외로움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계속 교류하다 보면 조금 더 가까워도 서로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보인다. 서로 상처를 입지 않도록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도 안전한 거리 속에서 만나고. 또 조심스레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의 안전거리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자기 객관화와 타인의 안전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도 볼 수 있는 안목이 길러져 능숙하게, 어른스럽게 혹독한 외로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나 혼자 외로움 속에서 떨지 않길, 추위에 등 떠밀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