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월 Oct 15. 2022

존재의 변질

디지털에 삼켜진 세상

 지금의 세상은 디지털에 삼켜져 있다. 수많은 정보들을 데이터로 변환하는 것부터 시작했던 것은 이젠 모든 물질들과 사람의 외모, 특정한 순간까지 모두 디지털 정보로 재구성한다. 이렇게 디지털화된 것들은 사람이 소비하기 위한 것들이 된다. 덕분에 기억되고 추억의 매개체였던 사진들은 주목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버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외침들은 뒤엉키고 중첩된 소음이 되어 오히려 피로감을 제공한다.


 모든 것들이 상품화가 된다. 개인의 얼굴, 경험, 행동 패턴은 데이터 조각들이 되어 무언가를 사고, 팔기 위한 가벼운 무언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특별해 ‘보이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들은 진정 특별한 순간과는 달리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하고 또 다른 것들에 밀려 기억에서 잊힌다. 긴 만족감보다는 현실을 잊게 해 줄 찰나의 일탈이자 순간의 쾌락에 사람들은 중독된다. 그 갈증은 바닷물을 마시듯이 채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덩치를 키워만 간다.


 ‘타인’ 또한 유대감을 갖고 서로의 존재를 공유하는 특별한 관계에서 시간과 경험을 소비하기 위한 매개체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닌, 나를 바라보는 여러 사람들 중 ‘1’. 나와 함께하는 몇 사람들 중 ‘1’. 변질된 관계는 이제는 서로 기대고 섞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소비하고, 나를 소비하게 만드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을 소비 대상으로 만들어버린 세상은 그것들을 알리고 이목을 끌려는 소음들로 가득 차있다. 무언가에 대해 ‘특별함’을 느껴 이끌리기보다는 화려한 외견과 언변으로 현혹시키고 정작 지나고 보면 무엇 하나 남지 않는 공허함만이 존재한다.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족해졌으나 오히려 존재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어버린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사물의 소멸_한병철’을 읽다가

매거진의 이전글 두 가지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