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평생동안 불완전하다.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고 조금만 성장하면 그 종으로써 완전해지고, 한계에 도달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육체적인 면에는 한계가 있어도 정신적인 면에서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이로운 성장을 이뤄내더라도 늘 그 위의 세계를 눈에 담고 자신의 모자람과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 이 메커니즘 덕분에 거시적인 세계를 넘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시세계로 모험을 떠나고, 푸른 하늘 너머의 검고 끝없는 우주를 담으려 한다. 인간 그 자신에 대해서도 사고 체계와 행동 원리를 분석하여 다른 인간들과 원활한 소통과 영원히 이상적인 집단을 이뤄내려 하지만 그 시도는 마치 그것에 도달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서 그쳤을 뿐 이뤄지지 않았다. 간혹 성경 속의 예수처럼 수 천, 수만 년에 한 번 한 개체가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가 되더라도 다른 인간들까지 그것에 도달하기에는 아무리 길을 보여주고 이끌어주더라도 긴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학습과 수련에 정진하여 완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시간은 한평생의 삶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대부분 그렇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늘 어떤 부분에서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이것이 주는 불안감과 채우겠다는 욕망이 사람을 계속해서 성장하게 만들고, 갈구하게 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점이 결핍되어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외부의 다른 것을 부정한다. '외부의 다른 것'은 주로 타인, 집단, 혹은 인간이나 자연이 만들어 낸 시스템을 향한다. 그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뱉어내지고, 이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염된다. 분노에 물든 사람들은 한편으론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결핍에 의해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비슷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과 뭉치게 되고 미지의 결핍을 핵으로 똘똘 뭉친 집단은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지녔지만 자신의 성장이 아닌 현 시스템의 붕괴를 통한 혼돈을 주목적으로 하는 파괴적인 집단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벌어진 비극은 인류의 역사에서도 무수히 많았고 현재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결핍을 회피하는 것이 끔찍한 악몽으로 이어짐에도 이는 쉽게 고쳐질 수 없다. 한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아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가진 지금의 안락한 세계를 깨어버리고 제 발로 척박한 황야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여태까지 자신을 바깥 세계로부터 보호해 주던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존재 자체로도 소중한 사람이다' 따위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제 손으로 부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는 문장에서도 말하듯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깨지 못하는 사람은 미지의 것들을 경험하고 성장을 거듭할 수 있는 진정한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 곪아갈 수밖에 없다.
결핍을 받아들인 사람은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직시한다. 애초부터 결핍된 존재들이 만들어 낸 세상이 부조리함을 깨닫고, 그 부조리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 속에서도 자신의 생존과 성장에 도움이 될 이점들을 적절히 이용하고 습득한다. 또한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깨닫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려는 듯이 무의식적으로 주변에서 공부가 되는 점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녹여낸다. 그들은 지식과 성장에 굶주린 늑대처럼 행동하며, 그 허기는 타인의 인정과 삶의 안정감 따위로는 채워지지 않고 영원에 가깝도록 유지된다. 다만 어느 정도 굶주림이 유지되면 그것이 주는 허기의 고통은 점차 줄어들고, 그 속을 채워 넣을 때의 달콤함만이 입안에 맴돈다. 찰나에 불과한 그 달콤함에 취해 또다시 새로운 먹잇감을 향해 내달리고 집어삼키기를 반복한다. 타인이 보기에는 만족을 모르고 끝도 없이 제 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미치광이로 보일 수 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달콤함을 끝없이 느낄 수 있는 마약과 같은 행복이 지천에 널린 천국처럼 느껴진다. 그런 이에겐 시선, 평판, 물질 따위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갈증을 채울 수 있는 것인지만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끝이 없어 보이는 갈증과 행복의 쳇바퀴는 굶주림에 끝도 없이 살육하고 먹어치우던 늑대가 늙어 이전처럼 신속하고 맹렬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아사에 이르는 지경이 되었을 때에야 그 순간에 도달해 있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정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