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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Apr 08. 2023

육체를 통제하는 이성

욕구와 본능, 그리고 이성의 상관관계

 당연한 소리지만 인간은 육체를 가진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의 평균치보다 더 크고 효율적으로 짜이도록 발달된 뇌를 통해 과거를 반추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수없이 많은 사고를 하지만, 그런 이성적인 사고는 결국 동물의 육체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다. 고로 아무리 이성을 발달시키고 이에 집중하려 해도 동물의 본능과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해도, 그 판단의 기저에는 주변 환경 혹은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직감이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현재 심리 상태 또한 결정의 방향을 좌우하기도 한다. 단순히 몸이 심하게 안 좋고 피곤에 찌들어있는 상태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발전을 위한 일을 수행하려면 어금니가 부러지도록 이 악물고 나아갈 수 있는 의지정도는 있어야 간신히 가능하다.


 우리는 야생마 같은, 혹은 비글 같은 육체를 통제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들을 이용한다. 루틴을 만들어 반복하여 습관으로 정착시켜서 삶에 도움이 되지만 더럽게 하기 싫은 일들을 매일같이 할 수 있도록 하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 체력도 기르고 평상시에도 이성이 육체를, 나아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도록 통제력을 키운다. 육체가 기피하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이겨내면서 이성은 육체에 대한 통제력과 주도권을 갖게 되고, 육체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은 이성은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끈다. 운동이 아니어도 먹고 싶지 않지만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던가, 금주와 금연을 한다던가, 찰나동안 욕구만 충족시켜 주는 소비를 절제한다던가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이 방법들의 공통점은 모두 장기적으로는 이롭지만 당장 실행하기엔 괴로움이 따르는 일이란 것이다. 육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들이 제거되고, 그와 동시에 육체와 육체에서 생겨나는 본능적 욕구들을 억제할 통제력이 길러지니 행복한 삶을, 이상적인 삶을 바란다면 통제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통제력도 없는데 자신의 순간적인 본능과 욕구, 감정에 이끌려 실수를 했다고 후회할 필요 없다. 애초부터 삶의 주도권이 이성에게 없었으니, 그건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 부족한 점에 대해 반추하기보다 여기서 더 나아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진심으로 노력하는 것이 주도적인 삶의 정도다. 그리고 육체로 인한 본능 탓에 실수가 생긴다고 해서 이를 억압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 좁은 곳에 가둬놓은 동물은 그것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 일부분, 혹은 큰 부분을 포기해 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 상태에 빠진 동물은 대게 섭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굶어 죽어버리거나 자해를 하기까지 한다. 반면 순응하지 않는다면 맹수와 같이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길길이 날뛰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실수와 잘못을 하지 않도록 키웠던 통제력이 되려 감당하기 힘든 더 큰 잘못을 만들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자신의 필요성 때문에 물길을 막고자 한다면 반드시 댐처럼 주기적으로 물을 방류해 내거나, 다른 물길을 뚫어놓음으로써 물이 계속 쌓이다가 터져 나오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사람의 욕구는 억누른다고 해서 자연히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인 욕구(식욕, 성욕, 수면욕,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욕구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속에 쌓이다가 어느 순간 터져 나와버리거나 뒤틀리게 되어 기괴한 모습으로 발현되기도 하니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주기적으로 산책을 시켜 주듯 자신의 몸도 이처럼 필요할 땐 반드시 단호하게 다루더라도 종종 융통성 있게 다뤄야만 망가지지 않는다.

 여러 책들을 읽다 보면 이성을 '선'으로, 감정과 본능을 '악'으로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절대 옳지 않으며 활용하기에 따라 다르다. 자신에게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본능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위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사람들에게 표현한다면 선한 것으로 볼 수 있고, 1차원적으로 타인의 삶에 끼어들어 억지로 관심을 끌어내며 배설에 가까운 자기 표출을 한다면 이는 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 되었건 활용하기 나름이란 것이다. 마냥 이성만 키우려 해서도 안 된다. 근본적으로 이성은 육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이니까.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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