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손님이 없을 시간에 잠시 담배를 태우러 나간다. 주말의 오후 10시가 넘은 느지막한 시간대에도 늘 도로에는 차들로 꽉 차있다. 도대체 이 많은 차들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의문이 든다. 아마 이 궁금증은 진로를 정할 때부터 이어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침 7시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학교로 가서, 다음날이 막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던 때. 그리고 그 시간에도 인도 옆 도로를 매섭게 달리던 차 소리들과 간혹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다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19년 평생 생각도 못 해보았고 많은 것을 경험하지도 못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소신을 갖고 살아갈지도 전혀 생각할 틈도 없었던 미성년자에게 앞으로 이후의 평생 동안 돈을 벌어 입에 풀칠할 직업을 고르라 하니 신중할래도 신중할 수 있었겠냐만,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다들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봐야 우물 안 개구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맹인이 코끼리의 몸을 더듬어보며 어떻게 생긴 것인지 추측하는 것에 비하면 조금은 더 나은 방법이었지 않을까.
지금은 그깟 진로보다 더 큰, 근본적인 고민에 빠져 산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내 삶은 무엇을 위한 삶인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그 행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로를 정하기 이전에 이것부터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나 싶다. 내가 어떤 소신을 위해 살 것인지, 내 삶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도 모르는 채 당장 밥벌이를 위해 배울 기술을 택하라고 한다면 그게 진짜 평생 써먹을 직업이 될 가능성은 극도로 낮지 않나. 내가 풀을 먹는 동물인지, 고기를 먹는 동물인지, 하물며 플랑크톤을 먹는 동물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 삶의 터전이 될 곳을 정할 수 있나. 스스로에 대한 깊은 사유가 이뤄지고 자신의 주식이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에야 풀이 많은 초원 중에서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연한 풀이 자라는 평야를, 여러 짐승 중에서도 유독 내 입에 착 감기던 소가 많은 들판을, 플랑크톤 보단 씹는 맛이 더 좋다고 느껴졌던 크릴새우가 많은 바닷속을 택할 수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렇게 요상한 비유들을 들어보며 나만의 사유를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와 다시 눈에 들어오는 것들에 집중하면 또다시 분주한 사람들이 보인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바삐 돌아다니며 많은 일을 하는 사람들. 과연 저들은 어떤 목표로, 어떤 이유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봐야 행복보다 고통이 훨씬 많은데도 불구하고 어떤 행복이 치명적이었기에 저 슬픈 삶들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다들 앞으로 나아가라고만 한다.
그것이 어느 곳을 향할지도 모르는데도.
그러면 다들 방향을 정하라고 한다.
그 방향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데도.
그러면 그제야 왜 알아보지 못했느냐 다그친다.
당장 내 발 바로 앞에 어떤 돌멩이가 있고, 어떤 물 웅덩이가 있어 피해 가야 하는지 보느라 고개를 푹 숙인 채 지평선은커녕 바로 곁의 민들레를, 강변을, 갈대밭을,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밤하늘을 수놓은 달과 그 곁의 별을 눈에 담을 찰나의 시간조차 없었는데도.
한편으론 스스로가 한심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 소소하고 커다란 행복들을 모조리 지나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오고 있었기에. 모두가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면서. 어쩌면 정말 모두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런 귀찮은, 생산성 떨어지는 것들 따윈 진정으로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아닌 것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남들처럼 그것을 외면했다. 내게는 그것에 대해 사유하고 고뇌하는 것이 정상이더라도 다른 이들에겐 한없이 비정상처럼 여겨지니 마치 고구마 밭에 섞여든 도라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이 도라지인 줄 모르고 잡초로 여기는 이상한 곳. 아, 혹시 도라지 밭에 섞인 고구마일지도 모르겠다.
대략적인 방향은 알겠지만 아직 그곳까지 어떤 루트를 통해 나아갈지는 모르겠다. 당장 내 앞에 어떤 길들이 펼쳐져 있는지도 모르니까. 아마 그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누구한테 물어본들 그들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그들이 지나온 길에 대한 것일 뿐, 내 앞에 있는 길과는 전혀 다른 곳들일 테니까. 그러니 그만 침대 속 몽상은 접어두고, 다음날의 나에게 맡긴다.
무엇이 나올지에 대해 걱정하기보단 무엇인지를 보고 나서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