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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Jun 14. 2023

Agonia : 투쟁

삶에서 경쟁이 갖는 무게


 초등학생 때 자전거를 연습했었다. 계기는 별거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의 자전거를 타고 내가 걷는 속도는 물론 전력으로 뜀박질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나아가며 속도를 즐기고 바람을 만끽하는 모습이 부러워 나도 자전거가 타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 물론 그렇듯 만신창이가 됐었다. 아버지와 함께 하기도 했고, 아버지가 퇴근하시기 전이면 나 혼자 자전거 자물쇠 열쇠를 들고나가 운동장에서 홀로 낑낑대며 자전거를 타려 했다. 키에 맞춰진 안장에 간신히 다리를 걸치고 낑낑대며 페달을 반바퀴 정도 밟다 발을 짚고, 또 조금 나아가는 듯하다 발을 디뎠다. 보조바퀴가 달려있는 네발자전거일 땐 균형을 잡지 않아도, 멈춰있어도 지탱이 됐었지만 앞뒤로 두 개의 바퀴밖에 없는 자전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혀 잡히지 않는 균형에 겁을 먹었던 나는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한참 애를 쓰다가, 퇴근하신 아버지가 뒤 안장을 잡아주시자 그제야 양발로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뒤는 여느 자전거 시작이 그렇듯, 아버지의 손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즐기고 있었더니 뒤에서 잡아주고 계실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에 곧장 바퀴는 미끄러졌고 바닥을 뒹구며 흙투성이가 되고 무릎이 까졌지만 아픔은 찰나뿐이었고 나도 모르는 새에 혼자서도 자전거를 타고 나아갈 수 있다는 희열이 벅차올랐다.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갈 때의 추진력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게 해 준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균형을 잃고 무너질 걱정에 제대로 된 출발조차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외부의 조력이던, 무릎이 깨질 것까지 각오한 독기 덕분이건 일단 나아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시작은 별 거 아니었고 균형 따위는 목표를 위해 과정마저도 즐기며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유한하고 위태로운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경쟁은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평화로워 보이는 식물들조차 그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햇볕을 더 받고자 가지를 뻗고, 말라죽지 않기 위해 뿌리를 더욱 넓게 퍼뜨리며 다른 식물들과도 경쟁하는데 훨씬 역동적인 동물들은 오죽할까. 생태계의 먹이사슬대로 육식동물은 초식동물을 사냥하고, 초식동물은 풀을 뜯는다. 새들은 작은 곤충들을 예리한 눈으로 감지해 쪼아 먹고, 곤충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호색과 독을 품는다. 같은 종 사이에서도 다른 놈들에게 먹이를 빼앗기면 자신이 굶어 죽는 것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기에 다른 놈들과 싸워 자신의 영역을 만들고 이를 지켜낸다. 저보다 강한 다른 놈을 막아내고, 쫓아내기 위해 무리를 만든다. 대상이 같은 종이건 다른 종이건, 심지어 자연이건 경쟁하며 뺏고 빼앗기는 것은 이 자그마한 세상 속 변하지 않는 이치다. 살아남는 생명은 반드시 다른 생명을 빼앗고, 착취한다.


한때 목표를 잃고 주저앉아 방에서 머무를 때가 있었다. 문 밖의 모든 것이 두려웠고, 문 안의 내가 혐오스러웠으며, 무언가를 위해 나가 다른 사람들과 악착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저 평화롭게, 아무 일도 없던 것 마냥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레 겁을 먹고 경쟁을 하고 싶지 않다고, 현재 상태에 머무르고 싶다고 해서 실제로 머물러버리면 그것은 현상유지가 아닌 퇴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정으로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더 큰 성장을 이루는 것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고통스럽다. 자전거는 나아가는 힘으로 균형을 잡는다. 제자리에 멈춰서 균형을 잡는 일은 노련한 이들이나 가능하며, 물론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체력소모가 크기 마련이다. 다만 앞으로 나아가며 균형을 잡는다면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바람과 계속해서 바뀌는 풍경들까지도 에너지원이 되어준다. 현재 상태에 머무르며 '적당히'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일도 마찬가지다. 머무르려고만 한다면 균형을 잡는 일에 훨씬 많은 체력이 소모될 수밖에 없고, 성장과 쟁취를 통한 도파민마저 없다면 결국 지쳐 균형을 잃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변수들을 경계하고 나아가는 것을 멈추는 게 아니라 앞으로 찾아올 변수들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자신의 성장과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그 대상이 다른 개인일지, 혹은 집단일지, 시스템일지, '순리'로 여겨지는 무엇 일진 몰라도 개인적인 성장을 하고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만들려 할수록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내 소유로 만들고, 타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쟁취해 내고, 나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 다른 것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자신을 증명하는 일은, 무수한 타인의 위에 올라서는 모습을 통해 각인되는 과정이니까. 날카로운 발톱과 질긴 가죽을 가진 짐승들조차 참혹하게 싸워 살아남으려 하는데 훨씬 유약하고 약하기에 겁도 많은 인간은 가능한 한 많은 안배를 두려고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쌓아두며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생존을 도모한다. 악착같은 성장은, 경쟁 끝에 얻어내는 쟁취는, 이미 풍족함에도 계속 쌓아가려는 소유는 추악한 욕심의 산물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들이다. 정체되어 있으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주변의 것들에게 금세 뒤쳐져 도태되어 스러진다.


 불꽃이 꺼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땔감을 집어삼키고 스스로를 불태워 빛내야 한다. 그것을 포기한 불꽃은 재만 간신히 남아 그것의 존재를 은유적으로 남겨놓을 뿐이고, 그 흔적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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