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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Jul 21. 2023

소통이 뭐길래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왜 외로운가?

3년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자연스레 자주 듣게 되는 단어 '소통'.

 SNS의 근본적인 목적이 소통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고, 자신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만들기 위해서도 꾸준한 '소통'의 필요를 강조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아직 자신의 가치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콘텐츠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며 좋아요와 댓글 등의 활동을 통해 친밀감을 다져놓는다면 상대방들도 내게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지며 친밀감이 충분히 다져지지 않았더라도 사람에겐 무언가를 받았으면 상대방에게도 해주어야 한다는 심리도 있고 그 관심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도 어느 정도 관심을 표현하게 된다. 이렇게 소통을 통해 좋아요, 공유, 댓글 등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알고리즘은 이를 관심도가 높다고 분류하고 자연스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를 노출시켜 주니 더욱 입을 모아 소통을 부르짖게 되고 여기에 집착하게 된다. 그걸 더 효과적으로,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참여하거나 여러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로 칭하는 활동을 하기도 하고.

다만 이런 형태의 지극히 가벼운 소통이 이어질수록 진정으로 원하는 소통의 기회는 줄어든다.'던바의 수'에 따르면 인간이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원은 150명으로 한정된다고 한다. 여기에는 가족, 비즈니스 동료,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가 포함된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사회적 관계'에 전력으로 몰두할 수 있을 경우에나 한계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건 우리의 시간과 육체, 정신력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회적 관계가 아닌 얕은 연결에 할애할수록 진정한 관계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든다. 그것이 인터넷과 SNS로 인해 더욱 소통하기 좋은 세상이 되었음에도 사람들이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다. 백날 텍스트와 이미지로 소통을 하더라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더욱 깊은 유대를 맺지 못한다면 진정한 관계는 이뤄지지 못하고 외로움과 고독함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신이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원한다면 SNS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이를 진정한 관계에 이르기 위한 도구로 명확히 인지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진정한 관계는 무엇인가? 단지 시간이 날 때 만나서 근황을 떠들고, 술을 마시며 웃으며 심심풀이를 할 수 있는 관계도 충분히 가치 있지만 그걸론 부족하다. 진정한 관계는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온전히 이해하며 감정적으로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때에 이뤄진다. 이해와 공감은 따로는 쉽게도 가능하다. 이성적으로는 '옳지 않다'라고 생각이 들더라도 공감은 할 수 있고, 반대로 이성적으로 옳다고 이해하더라도 마음 한편으론 공감하지 못해 찝찝하기 너무나 쉽다. 이 둘이 동시에 이뤄지기 위해선 관계가 가까워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야 하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성향과 환경이 어느 정도 이상 들어맞아야 가능하다.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싫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이 눈에 띄기만 해도, 귀에 들리기만 해도 거북하고 불쾌함이 감돈다. 이런 느낌은 싫어하게 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어떠한 가치도 주지 않아 중요하지 않은 한없이 가벼운 관계에 얽매이게 될 때에도 조금이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아무리 미미한 스트레스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겹겹이 쌓이는 피로감과 스트레스에 인간관계 자체에 회의감을 느끼기 쉬워진다. 이는 나처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민감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더욱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두루두루 친해지기보다는 관계를 맺을 때 선을 확실히 그어놓고 그 범위에서만 소통하고 나의 시간을, 체력을 투자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면 친화력 좋은 사람들보다 인간관계의 폭이 좁아져 큰 리스크가 되지만 반면 확실한 장점도 있다. 어느 정도 사람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고 이를 위해 노력한다면 자신과 결이 맞는, '진정한 사회적 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을 금세 찾아내고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 쉬워진다. 이건 미각이 예민한 사람들이 미식을 찾아내고 청각이 예민한 이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욱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건, 성향이야 어쩌든 소통의 본질을 알고 '진정한 사회적 관계'를 위한 도구인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잘 알아둔다면 지금처럼 쭉정이 같은 관계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평범하게 수십 년 이어지는 관계가 아닌 짧은 시간에도 공감과 이해를 이뤄내 삶을 살아가며 의지되고 도움이 되는 관계들을 다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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