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유래는 불교이며, 과거 극락정토로 가는 배가 왔을 때, 한 보살이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보살은 이미 떠나가는 배의 밧줄에 악착같이 매달려서 결국 극락정토로 갔다고 한다. 이미 늦어버렸다는 좌절감에 포기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목표에 도달하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바람이, 갈망이, 혹은 열망이 이렇게 악착같은 모습을 보이게 만든다.
깨어있는 하루 14시간 중 절반 이상을 근육을 찢어발기고 심장을 터뜨릴 듯이 몰아붙이는 운동에 매진하는 사람이 흘린 웅덩이처럼 고인 땀방울을 보며 저게 어찌 사람의 피부에서 다 쏟아져 나왔는가 하며 악착같다는 말을 떠올린다.
매일 방구석에서 푸석한 식빵만 씹으며 깎아낼 수 있는 살은 모두 깎아내고 뼈만 간신히 남긴 듯한 삶 속에서 돈을 끌어모아 미래의 자신을 위한 돈을 굴려나가는 사람의 독기만으로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눈빛에 악착같다는 말을 떠올린다.
고작 네다섯 글자로 끝나버리는 글자를 자신의 삶에 집어넣기 위해 잠을 한계까지 줄여가며 원치도 않는 정보들을 머릿속에 때려 박고 뼈에 새겨가는 사람의 차갑게 식은 듯한 모습 뒤편의 끓어오르는 열정을 보며 악착같다고 말한다.
악착같다는 말은 자신의 능력에 적당한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공을 가져가는 사람들에게는 붙지 않는다. 본연에 가지고 있던 능력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이상의 것,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시도를 하기 전부터 본능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좌절감부터 느껴지는 것, 시작을 하더라도 끊임없이 포기하고픈 생각이 덮쳐 방향은 맞는지, 거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알 수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음에도 자신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사실 하나에만 의지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끊임없이 나아가는 이들에게만 '악착'그 자체도 아닌 '악착같다'라는 편린이나마 겨우 붙는다.
말의 유래가 된 악착보살이 밧줄에 매달려서 끝끝내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붙들고 있을 때 마음도 그와 같았을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버텨야 도착할지, 혹여나 밧줄이 끊어져버리진 않을지, 밧줄을 잡고 있는 동안 계속 맞게 되는 물살을 과연 자신이 견뎌낼 수 있을지 따위의 의문과 걱정들이 밧줄만 간신히 붙들고 있는 자신을 버리고 평화로 포장된 포기의 길을 향하도록 끊임없이 유혹하지만 자신이 밧줄을 붙잡고 버티는 이상 계속해서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그 단순하고 단편적인, 하지만 가장 확실한 사실 덕분에 밧줄을 붙잡은 손아귀의 힘을 더욱 강하게 주고 버텨낸 것이다.
그 악착보살의 모습을 비슷하게 보여주어 '악착같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도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계속 노력하는 게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당장 내일이면 목표를 이뤄낼 수 있다 하더라도 오늘 밤 과로로 찾아온 심정지로 죽어버려 실패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변수들 탓에 언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영영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임에도. 하지만 그런 불확실함에도 계속해서 나아간다. 계속 나아가기만 한다면 자신이 꺾이지 않는 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그러는 과정 자체로도 자신의 삶이 충만해진다는 것을 온 감각으로 느끼고 있기에.
자신이 하는 노력이 목표에 티끌만치라도 가까워지게 하고 있다는 그 확고한 사실을 믿는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분명히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자신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믿는다.
자신의 결정과 노력을 믿는다.
자신을 믿는다.
객관적인 사실처럼 느껴지는 어떤 말도, 진리처럼 느껴지는 무엇도 의심이 깃들고 반박할 수 있으며 부정될 수 있으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한 변치 않고, 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