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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월 Dec 28. 2023

일시정지

제일 바쁜 때에 도진 감기몸살

완전히 퍼져버렸다.

 

 2023년 하반기에도 쉴 틈 없이 바쁜 학교 생활과 프리랜서 일 등등 하루살이의 심정으로 어떻게든 버텨나가고 있었는데, 그 마무리인 기말고사에서 완전히 펑크가 났다.


 기말고사 시험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목이 간질거리고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감기기운인가, 싶어 조금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괜찮으려니 했다. 그저 최근 수면제도 받지 않아 밤 2시 혹은 아침 7시에 자고 낮에도 계속 일만 하는 등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서 잠깐 그러려니 싶었다. 다음날, 평소처럼 8시간을 자고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깨질 듯이 울리는 머리와 바싹 말라 기침을 하다 구역질이 올라오고도 계속 이어지는 콜록거림에 뭔가 상당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을 간다던가 특별한 조치는 취할 수 없었다. 당장 기말 시험을 앞두고 있고, 이 몸 상태로 진료를 보러 가려면 최소한 택시에, 구급차정도는 타야 할 것 같았다. 프리랜서일과 아르바이트로 그렇게 쪼들리는 일상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병원을 가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데 쓰는 택시비와 진료비, 그리고 거기에 소모될 체력까지 감당할 자신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며 학교를 기어올라가 시험을 치고 집으로 오자마자 잠만 잤다.

 조금 자고 일어나서 공부를 할 생각이었는데 수면에 들어간 몸은 도저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매일같이 하던 인스타그램과 한창 성장 중인 네이버 블로그의 업로드 등 아무것도 못했다. 의자 앞에 앉아 타이핑을 치거나, 그토록 즐기던 독서도 단 한 장도 못했다.


 그렇게 몸져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에 오랜만에 빠져있으니 그간 악착같이 해오던 일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과 노력, 열정을 하수구에 미친 듯이 버리면서 그걸로 희열을,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

 그동안 무슨 병신 같은 일들을 해온 거지 싶은 생각이 거의 멈춰버린 뇌의 남은 부분을 마저 채워버린다. 그리고 그 생각과 함께 시험공부도, 그토록 좋아하던 일도, 심지어 뻑뻑 피던 담배조차도 목이 아프고 구역질이 올라와 피지 못하게 되자 정말 숨만 쉬고 아무 쓸모없는 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3일 차, 여차저차 조달받은 감기약과 두통약, 꿀물 등을 챙겨 먹으며 다 내던져버린 심정으로 잠만 잤더니 집 안에서 기어 다닐 순 있을 정도로 몸이 회복되었다. 그렇게 생각이 가능한 정도가 되니 곧바로 일 생각부터 났다. '블로그 업로드가 너무 밀렸을 텐데, 유입률이 다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인스타그램은 안 그래도 요즘 상태가 안 좋았는데, 노출도가 얼마나 더 떨어졌으려나', '외주 일정은 지금 어떻게 되는 거지? 과제도 해야 하는데'...


 고작 며칠 앓아누운 것에 대한 대가는 너무도 컸다.   

 잠깐이나마 일어나 일을 하지 못했던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다시 밀린 일들을 더욱 버겁게 해치워야 할 앞으로가 막막했다. 일단은 꾸역꾸역 움직이며 하나씩 해치웠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지금 하는 일들을 중요도순으로 정리하고, 다시 급한 순으로 정리했다. 그 어디에도 학과 공부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동안은 계속하던 일이니, 남들도 다 하는 것이니, 집안 어른들이 꼭 해야만 한다느니 하는 말에 해왔지만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져 보니 그런데에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도 하찮게 느껴졌다.

 난 이미 프리랜서로 자리 잡고 일하고 있으며 그 염병할 대학공부를 이어가더라도 그쪽 길로 회사에 취직해 매일 같은 월급을 벌고, 안정적인 가정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대가로 안정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평범한 지옥을 사는 일을 하느니 예술병에 걸린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에서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고 싶다.

 몸져누워있던 시간조차 책 읽고, 글 쓸 생각만 나던 걸 보면 난 단순히 먹고살 궁리만 해야 할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먹고살 수 있기까지 있어야 하는 사람이란 걸 더욱 똑똑히 알아낸 것이다. 말로만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게 아니라 뇌리 깊숙이 박힐 정도로.


 그렇게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무너진 곳에서도 기어코 당장의 삶의 방향을 잡아낸 걸 보면 역시 어떤 일이건 마냥 흘려보낼 정도로 무의미하지 않다. 백해무익하게 아픈 일조차도 오히려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쓸데없는 짐덩이들을 집어던지며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물론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다시금 멀끔한 상태로 수리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가능한 것이지만.


 아, 그리고 그 염병할 감기 덕분에 흡연량도 현저히 줄었다. 원래 8미리 담배를 하루 8개비가량 피우던 데에서 지금은 4미리 정도의 담배를 하루 1~2개비 겨우 피우거나 아예 안 피는 날도 많아졌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큰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근데 그렇게까지 아프고 구역질이 나면서도 아예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걸 보면 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하고, 하루라도 빨리 이 악물고 끊어내야 할 거리인 듯하다.

징글징글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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