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호기심과 생명체
생명체란 참으로 진기한 것입니다. 그러니 외계생명체라는 것을 발견해 보려고 혈안이 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엄청나게 억지스러운 고의적인 무지, 범죄적인 무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물이 있다고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 운운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생명체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기대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별 반발받지 않고 오히려 호응을 얻으면서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인류의 정신을 진화론 같은 것으로 이미 세뇌시켜 놓았기 때문이죠.
무지의 반대는 지식이고 원리나 법칙, 성질과 같은 것들이 그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론은 전혀 지식이 될 수 없지요. 그런데 대다수의 인간은 확립된 진리의 지식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그리고 설을 진리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죠. 공식적으로는 론이라고 하는데 사실로 간주하고 공식적으로 법칙이나 원리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호기심을 잘못된 방향으로 갖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화성에 과연 생명체가 있을까? 토성이나 목성의 어떤 위성들에는 바다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 원시생명체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죠. 관심을 그릇된 방향으로 갖게 하기 위한 의도적으로 호도된 것에 의한 것이죠.
호기심이란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로 인해 만물을 탐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체에 대한 연구도 하게 되어 있는 것이죠.
현재까지 있었던 생물은 수백억 종이라고 하는데 셀 수 없이 다채로운 것이죠. 인간은 자연적인 식품에 더하여 매우 다양한 식품들을 개발해내고 있고 그중에 하나가 빵이라고 하면 빵도 얼마나 종류가 많습니까? 그렇게 다양한 것을 개발할 수 있는 성향과 역량 자체는 창조주를 닮아서이죠. 창조주 자신의 창조에 그러한 다양성이 담겨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은 왜 그렇게 존재하는 것입니까? 인간을 위해서입니다. 인간 중심원리에 의한 것이죠. 인간은 우선 그것들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조사를 하죠. 파브르의 곤충기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발견된 모든 것들이 생명공학적으로 인간의 문명의 발전에 응용, 기여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관련하여 뭔가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또 인간은 발견한 것을 응용하여 식물과 동물에 대해 품질개량이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죠. 유전자라는 것을 발견하여 관련 지식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응용도 하는 것이죠.
물론 우주에는 인간 이외에 인간보다 지적 수준이 뛰어난 존재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주를 단지 인간이 파악한 물리적인 우주보다 더 큰 범위까지 적용한다면 그런 존재는 그 안에 확정적으로 존재하죠. 그리고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 양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인간들처럼 타락된 상태여서 그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어떤 현상에 대해 그런 활동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하고 해석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물질적 우주라고 하는 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간이 하기에 따라 축복이나 재앙으로 작용하게 되어 있으며 인간이 연구하여 밝혀 내어 규정하도록 되어 있죠. 인간은 보는 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감각법칙에 의해서입니다. 그리하여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사용하여 미시세계나 거시세계를 보아 연구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죠. 태양에 대해서 목성에 대해여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이죠.
인간은 지음을 받은 성향대로 그리고 그 주어진 역량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그런 성향과 역량이 있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여 우선 지구를 나아가 아마도 우주 전역을 낙원으로 개척하여 행복하게 살면서 존재의 보람을 느끼도록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이러한 창조의 법, 인간의 보편이성에 의해서도 확립된 법칙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무시하여 무지한 상태에서, 악한 동기에서 의도적으로 고안된 거짓에 대해서는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받아들이면서 엉뚱한데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이죠. 위성이나 외계행성 등에서 생명체가 존재하느냐 하는 관심 따위가 그런 것이죠. 지독한 무지에 기인한 것입니다.
법칙에 대한 무지는 법칙을 거스르게 하여 병들고 늙고 죽게 되는 것이며 자연재해를 당하는 것이고 스스로 분열대립하는 구조를 만들고 서로 싸우고 전쟁을 일으켜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악한 모든 것들을 오히려 자연의 섭리, 질서라고 여기면서 당연히 여기기까지 하는 것이죠.
인간 중심원리라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은 인간이 그렇게 선택하면 반드시 그런 일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법칙을 알고 이에 순응하는 선택을 하면 그 섭리 안에 원래 마련된 축복을 반드시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