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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22. 2024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뉴턴이 물리에 관한 여러 법칙들을 발견한 것처럼 칸트는 논리에 관한 법칙들을 발견하였죠. 인간에게는 이처럼 발견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인간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주요 지적 기능이죠. 지성적, 오성적 기능인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발견하여 보람을 느끼도록 되어 있는 영역에 대한 것은 창조주가 선언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누가 언제 어떻게 발견할 것인지는 예정되어 있거나 그렇게 발견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학문적 호기심을 키우고 알아내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할 때 창조신호와 일치한 형상신호가 뇌에 잡히게 되면 발견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뇌에, 지각에 섬광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묘사도 있습니다.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의지와 노력이 비탕이 되어야 하죠. 


인간의 이러한 통찰력은 오성적인 것이죠. 그것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추구할 때 얻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물리적 통찰력이, 칸트는 논리에 대한 통찰력이 제대로 작동한 것이죠. 부단히 연구하고 묵상한 결과입니다. 


물론 물리와 논리라는 대상은 이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논리는 인간의 의식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물리는 의식외부의 대상에 관한 것이어서 인문과학, 자연과학으로 구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처럼 인간에게 발견하는 기능, 알아내는 기능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뇌의 목적은 앎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이성의 영역, 영적 도덕적 영역에 있어서는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으므로 말씀으로 선언되는 것이며. 그 외의 정신적, 물질적 영역에 대해서는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발견할 수 있도록 기능이 그렇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며 이점 자체도 법칙입니다. 이성, 오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그것이 법칙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명칭은 없을지라도요 


쉽게 알 수 있는 영역도 있죠. 바로 감성, 감각의 영역입니다. 즉각적으로 정확하게 알아내게 되어 있는데 이는 형상신호 즉 생각신호와는 달리 작용하는, 현상신호에 의한 것입니다. 태양에 관하여 붉고 둥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죠. 그러나 감성에 의해 직접 알 수 없는 것은 오성을 사용하여 많은 연구를 하는 중에 알게 되는 것이죠. 감성으로 직접 알 수 없는 것은 성질상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너무 작거나 가리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죠. 결국 감성으로 확인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알아낸다는 것, 발견한다는 것은 당연히 유일한 진리인 것인 것이죠. 진위를 분명하게 판가름할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죠. 


그러나 인간의 의식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성질의 세계도 있죠. 감정, 감상, 주관, 낭만의 영역이죠. 학문의 영역이 아닌 것입니다. 이성이나 오성 영역이 아닌 것이죠. 감성이나 감각과는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죠. 


인간의 의식, 영혼의 또 하나의 중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릿속으로 진위를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죠. 선악도 그렇습니다. 미추와는 관련이 있죠. 가슴으로 느끼는 세계이죠. 


선악과 진위는 유일성이 적용되죠. 누구나 그러해야 하고 그렇게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죠. 다름이 용인되지 않습니다. 하나가 정해지면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틀린 것이죠. 


그러나 위에 언급한 전혀 다른 의미의 감성의 세계는 그렇지 않죠. 전혀 다른 감성이란 태양의 모양이나 색에 대해서 느끼는 그런 감각적인 감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에 대비되는 파토스로서의 감성을 의미합니다. 감정의 의미죠. 


정확한 용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세계는 같음이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이성, 오성, 감성의 세계와는 다른 것이죠. 머리가 관련되어 있는 한은 유일하죠. 가수가 어떤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가가 악기를 연주할 때 보는 악보는 동일하고 유일한 것이 될 수 있죠. 그걸 보고 인간이 만든 악기로 연주할 때는 동일한 소리가 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보를 보고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고 할 때 다른 의미의 감성, 파토스가 개입되는 순간, 가슴이 관여하는 순간, 동일한 것이란 없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부르는 것인지 알 정도로 다 다르죠. 모창이라고 해서 의도적으로 똑 같이 불러 구별이 어렵게 하는 것이 힘들므로 그것으로 프로그램의 가치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죠. 


같은 소재를 두고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라고 할 때도 그렇습니다. 정확히 동일한 것이 나오기는 불가능하죠. 


심지어 로고스적인 것과 관련해서도 그렇습니다. 같은 내용을 가르쳐도 그 가르치는 방법에 있어서는 개성이 반영되죠. 표정을 짓고 몸짓을 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고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하는 등 복합적인 것이 관련되어 있죠. 전인격이 관련되어 있는데 당연히 가슴이 개입되는 부분도 있는 것이어서 똑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는 획일성에 벗어날 수는 없죠. 

다양성과 유일성 자체가 각각 법칙이며 전혀 상충되지 않습니다. 

제가 전달하는 것은 99% 이상이 이 유일성의 세계에 관련된 것입니다 


특정 법칙들의 실용성에 대해 다루기 전에 참고할만한 기초적인 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이성의 영역(영, 도덕, 종교, 철학)이 아니라 학문의 영역, 지성의 영역에 대해서는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관련 법칙, 유일한 진리를 발견하는 기능이 주어져 있다는 것, 크게는 물리와 심리(의식)에 관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너무 이런 점에만 집중하다 보면 혼란이 생길 여지를 고려해 전혀 성격이 다른 다양성의 세계가 있음을 참고적으로 상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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