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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n 23. 2024

노래를 들을 때

노래를 들을 때 


노래를 부를 경우 곡과 가사는 통일되어 있습니다. 곡이나 가사에 호기심이나 특별한 기대가 있어 특정인의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래를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곡이나 가사가 악보와 다르면 그 점에 신경이 쓰이게 되죠. 반박자라도 틀리면 귀를 거스르게 할 수 있죠. 기본적으로 유일한 그것에 고착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이죠. 


곡과 가사는 정해진대로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 노래의 정확한 곡과 가사는 통일된 인쇄물을 보면 알 수 있죠. 


그렇지만 가창이나 연주를 듣고 그처럼 행복해하는 것이며 또 그러한 행복감에 젖기 위해서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같은 곡을 그 곡에 따라 여러 가수들이 부르지요. 그 곡이나 가사를 알리기 위해서가 전혀 아니지요. 다 맛이 다르고 얻는 즐거움이 다른 것입니다. 


노래를 부를 경우 곡이나 가사를 틀리게 부를 수 있죠. 그것은 실수가 될지언정 불법이나 부도덕이나 범죄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부를 경우 우열의 차이는 현저하게 있을 수 있죠. 그러나 이때 열등하다는 것도 그러합니다.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는 인간이 하는 일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알려줍니다. 


작곡가는 인간에게 어떤 특유한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곡을 만들죠. 작사자도 그 의도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것으로 가사를 쓸 것입니다. 심사숙고하여 최종적으로 완성이 되면 가창자들은 곡과 가사에 있어 그대로 부르게 되며 가수는 물론 이 두 가지 면에서 모범이 됩니다. 가수가 곡이나 가사를 의도적이 아닌 경우 틀리게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죠. 


인간에게 일선에서 그 노래로 직접적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가수이죠. 그러므로 가수가 가장 큰 주목을 받죠. 작곡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피조물의 행복을 위해 마련한 표준에 따라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표준, 지침에 따라 연습을 하고 훈련을 받아야죠. 


정해진 곡과 가사에 따라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제한이나 억압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 곡과 가사가 좋아서 자신이 그것을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연습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통제나 강제, 구속이라는 개념은 조금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왜곡이죠. 


창조주에 의해 삶의 지침, 설명서로 주어진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런 식의 인식을 갖도록 세뇌되어 있습니다. 

삶에서 진정한 행복이 없는 이유입니다. 세상은 자기 멋대로 내지르는 괴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무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소리들이죠. 소음으로 가득 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메시지들은 모두 그러한 것입니다. 악보에 따라 부르는 노래들이 아닌 것이죠. 어떤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가 가수가 주는 그런 즐거움을 인간들에게 주고 있습니까? 


제각기 시끄러운 소리들을 내고 있을 뿐이죠. 매체들은 그런 소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이 아름답고 인간에게 큰 행복을 주는 것은 그런 것들은 자동적으로 프로그램에 따라 즉 악보 그대로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아무리 다양해도 그 모두가 그렇습니다. 무수한 노래들이 각각 곡과 가사가 다르지만 그대로만 잘 부른다면 그 모두가 독특한 즐거움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음악이 어떠할 때 인간에게 행복감을 주는지 알면 인생이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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