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 감상
신비감, 외경감이라는 감상, 감정이 있습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의 임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무수한 감정들이 이미 의식세계에 있고 그것들 중 돌아가면서 느끼는 것이죠. 인간이 삶의 의미를 갖도록 그렇게 마련된 것입니다.
세상에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많죠. 자연적인 것들과 인공적인 것들 중에서도요.
신비, 신비감; 단지 모른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오묘함 그러므로 신적임, 신성함이 깃들여 있다는 것인데 관련되어 느끼는 감정 자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죠.
우주 전체만 아니라 지구만 하더라도 그 전역에 얼마나 많은 신기하고 신비한 것들이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은 인간 임의적인 것이 전혀 아니죠.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극히 작은 일부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일 뿐인 것이죠. 그중에 인간 임의적인 것 즉 인간이 만든 것들이 더해지는 것이죠. 삶의 여정이란 이러한 것들의 탐사이며 누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외부의 것이며 몸을 움직여 누릴 수 있는 것들이죠.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인간의 의식 자체, 인간으로서의 생명 자체에 대해 그렇게 해본적이 있습니까?
만물이 인간의 탐사를 위해 이미 마련되어 있듯이 의식의 세계도 그렇죠. 그중에 신비감이라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온갖 영적인 사물들이 이미 만들어져 있죠.
숲을 산책한다면 나무며 꽃이며 돌, 계곡, 각종 동물들이 그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듯이 의식의 세계 안의 영적 사물들도 그러하죠.
그러한 것들은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탐색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영안이 발달되어 있어야 그 구체적인 모습들을 보며 즐길 수 있죠.
또한 영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러한 영적 산책이 생활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가까이 두어야 할 생활필수품이 있듯이 생명이나 창조에 대한 외경감 같은 것도 영적으로는 그러한 것에 해당됩니다. 묵상이나 기도 같은 것도 당연히 그에 포함되죠. 먹을 것에 대해 신체를 사용하듯이 그러한 것을 위해 의식 즉 영적 기능을 매일 사용하는 것이죠.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이미 마련되어 있는 영적 사물들을 그렇게 누리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