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기적보다 우위인 것은
한 때 마술, 기적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오늘날의 인간들은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죠. 지금 불가능하게 여기는 것들도 조만간 가능해질 수 있죠.
물 위를 걷는 것을 기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비행기가 수백 명을 태우고 수백 킬로를 이동하는 것이 더 기이한 것입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저장이 되는 것, 처음에는 녹음기도 마술상자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TV는 더욱더 그랬을 것입니다.
오늘날은 온갖 마술과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만물에 대해 공동창조주이기도 하죠. 지구 전역의 동식물에는 세포의 복제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죠. 인간이 만든 어떤 것도 그렇게 못하죠. 돈이나 자동차나 그렇게 자기와 똑같은 것을 스스로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광합성 공장도 만들지 못합니다. 물과 이산화탄소로 포도당을 만들지 못하죠. 대부분의 식물들은 매일 그렇게 하고 있죠.
만물을 그렇게 운영되게 한 분이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소량의 물고가와 빵을 즉석 복제하여 수천 명을 먹인 것은 가뿐한 일이죠.
오늘날 어떤 건축자들은 웬만한 건물을 이틀 만에 짓는다고 하죠. 예수가 성전을 삼일 만에 짓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폭풍우룰 잠재우는 것이나 원격으로 질병을 치료한 것이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들은 가벼운 것입니다.
예수자신은 자신을 대속물로 기꺼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에 내줌으로써 가장 큰 사랑을 입증하였습니다.
사랑도 능력도 넘치게 있음이 증명되었죠. 그러나 인간의 자유의지는 터치하지 않았습니다. 뇌를 조정하여 진리를 강제로 입력시킨다던지 선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죠. 그렇게 하는 것은 그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창조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창조의 기본법칙을 범하는 것이죠. 모든 기적들은 창조의 법칙을 깨트려서가 아니라 이용해서 할 수 있죠. 병치료도 부활시키는 것도 물 위를 걷는 것도 빵 복제하는 것도 그러하죠.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것도요.
쇠는 공기보다 무거워 공중에 뜰 수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해 왔지만 쇠만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공중으로 장거리를 이동하죠. 자연법칙을 파괴해서가 아니라 이용해서이죠.
창조주가 스스로 만든 법칙을 깰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죠.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법칙을 스스로 껠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입니다. 반복적으로 큰 사랑과 기적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있죠. 거짓과 악에 대한 선택을 바꾸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모세가 보인 그 큰 기적들을 보고도 불순종하였죠. 심지어 창조주가 그들을 모두 죽이고 모세의 자손으로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알 수 있는 것은 사랑이나 기적적인 능력의 혜택을 입는 것도 인간의 선택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자유의 법칙이 다른 어떤 것보다 선행한다는 것이죠.
거짓과 악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절대수나 비율은 조금도 창조의 완전성을 훼손하지 않으며 사랑과 능력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만큼 인간개개인이 신적인 차원의 절대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오늘날 절대다수의 인간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죽음을 택합니다. 악과 거짓을 고집스럽게 택하는 것이죠. 기이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단지 법칙전달자로서 제가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창조주의 전달마련을 통해 전달된 이 자유의 법칙을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