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시간

by 법칙전달자

상대적 시간


일일이 여삼추 같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천년이 하루 같다거나 밤의 한 경점 같다는 표현도 있죠.


인간이 태어나서 시간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제 듣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갖게 된 순간을 기억 못 하는 것이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단어에 대해 익숙해 지는 것입니다. 개념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개별적이고 경험적인 성격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시간에 대해 자기 경험에 비추어 근시안적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수전에 구백여 살까지 사람이 살았다는 것도 믿지 않는 것이죠. 달을 년으로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억지 추측을 하기도 하는 것이죠.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기에도 100년을 넘기기 힘든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인데 인간이 그러한 경험에 비추어 시간에 대해 느끼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백살도 안 됐는데 늙고 죽는 것은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10년을 기다리라고 한다든지 10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 같은 것은 황당하게 여기기까지 하는 것이죠.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 100년도 짧은 세월이며 지루하지 않게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100년 전이라고 해봐야 1924년이죠. 한국은 일제강점기였지만 금방 지나가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100세인 사람에게 100년 후에 만나자고 했어도 신속하게 그 시간이 지나간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곧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죠. 한국전쟁도 일어났고 고속도로 및 전철 등 많은 개발이 있었죠. 단기 통치자들도 여러 번 바뀌었죠.


인간은 잘못된 현실에 속아 관념들을 갖게 됩니다. 원칙에 따른 개념을 갖지 못하죠. 경험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진리를 배우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죠. 인간이 뭔지 시간이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또한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이죠.


그러나 진리를 아는 사람은 시공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결국은 어느 공간에도 위치하게 될 수 있죠.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요. 진리를 아는 사람의 과거의 죽음은 잠을 자는 것입니다. 곧 깨어 즉 부활되어 죽음 없는 삶을 누리게 되죠. 지금도 생존세계에 있는 것입니다. (마가 12:26, 27) 잠자는 사람은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지금 생생하게 깨어 있으면서 치열하게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활동 등에 몰두한다 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100년 후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을 사람들이죠. 겨우 2124년인데요. 그때 존재하지 않게 되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기간 동안에 최대한 부와 쾌락을 누려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죠. 그때 그들의 후손이라는 사람도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살게 될 후손이라는 것을 갖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한국을 비롯하여 모든 나라들도 없어진 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어 없어졌다고 생각한 그들의 조상은 혹 그때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상의 시간과 관련된 상황은 사람들의 통념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됩니다.


사람들은 시간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갖게 된 모든 잘못된 관념들을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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