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용도

by 법칙전달자

기적의 용도


하나의 세포에만 반영되어 있는 지혜와 사랑과 신성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진화론이란 이 세포를 잘 볼 수 없었을 때 나온 것이죠. 지금처럼 세포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면 그런 이론은 나오기 불가능한 것이었죠.


그런 천문학적인 수의 세포의 조합으로 꽃과 나무, 동물, 인간이 형성되죠. 그리고 인간은 경우 정신적으로는 물론이고 생물학적으로도 다른 동물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에 반영되어 있는 지혜에 비하면 현재의 인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외모는 비할 바 없이 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괴리가 너무 큰 것이죠. 그 정도의 지혜가 있는 창조주라면 인간은 모든 면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 이어야죠. 어느 꽃도 화장이나 성형 그리고 옷을 입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아름답죠. 각기 개성적으로요. 동물들 증에서도 위장을 하거나 가려야 될 정도로 추한 외모를 가진 것은 없습니다.


원래 그랬었죠. 저주의 결과 지금과 같이 되었죠. 진화가 아니라 심각하게 퇴화, 퇴보한 것이죠.


세포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죠. 그 내부의 구조나 기능뿐 아니라 복제 하나만 보더라도 입이 떡 벌어지고 혀를 내두를 정도 이상의 경이입니다. 매일매일 기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졌다고도 하고 자유도덕행위자라고도 하죠.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표현에서 인간의식의 속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비약해서


인간은 창조주의 당연한 통치권에 대해서도 자동적으로 인정하고 순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죠. 선악과가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죠.


그들은 창조주의 통치권이 정당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며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창조주는 거짓밀을 하고 있다고 하여 그 도덕성에 도전을 하였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그러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반역에 가담하였죠.


대능한 영물이 천적 피조물들 가운데 창조주의 도덕성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창조주의 도덕성에 대해 입증할 필요가 있었죠.


그래서 그들의 그러한 도전이 옳은지를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죠. 사탄의 영향력 아래 인간은 수 천년 간 온갖 통치방법을 시도해보았습니다. 종교나 철학, 과학 등 온갖 수단들을 활용해 보았죠. 그래서 인간들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 진정한 자유나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까? 철저한 실패라는 것이 입증되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창조주는 회복 즉 지구를 낙원으로, 인간을 완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마련으로 하늘 정부의 천년통치를 계획하였습니다.


그럼 그 정부의 통치자들은 정말로 자격이 있으며 그렇게 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까? 인간들도 자신을 통치자로 뽑아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여러 공약을 하죠.


천년통치의 정부의 성원들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선출직이 아니라 임명직이죠.


예수와 그의 제자들 중에 일부가 그렇게 될 것이었죠. 그들은 범죄와 불공평, 궁핍과 고통, 심지어 병과 사망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였죠..


그런데 말로만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식량운제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적은 음식으로 수천 명을 먹임으로써 보여 주었고 폭풍우를 잠재움으로써 자연재해 같은 것을 제어할 수 있음도 보여준 것이죠. 불치병도 즉각적으로 낫게 하였고 심지어 원격으로도 치료하였죠. 죽은 사람도 살렸고요. 베드로나 바울 같은 그분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기적은 미래의 왕국정부의 능력에 대해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능력을 개인을 위해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죠. 시도바울도 자신의 병이나 동료신자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 능력을 사용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예수 자신도 아무리 고난 가운데 처했어도 자신을 위해 그런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죠.


성서 자체의 주제가 왕국이죠. 하늘왕국의 통치의 정당성의 입증인 것입니다. 전혀 종교적이 아닌 것이죠. 성서는 정치적인 책입니다.


예수나 그의 제자들의 성품뿐 아니라 능력에 있어서도 그들이 통치자의 자격이 온전히 있음을 기록하기 위한 것도 성서의 주요 목적이죠.


144,001명의 충분한 수의 통치자들이 성원을 교체하지 않고 천 년 간의 충분한 기간 동안의 통치를 통해 그 통치는 온전한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지금도 200개 정도의 나라에 속한 통치자 그룹의 수는 수십만이 되죠. 또 그들은 믿을 수 없다고 하여 바꾸는 일을 거듭하고 있죠.


그러나 그 누가 그리고 어떤 정부의 팀들이 진정으로 다른 인간을 성공적으로 통치하여 지유와 풍요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성서에 나오는 하늘정부의 성원들과는 너무나 비교되지 않습니까?


복음서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적들은 하늘정부의 성원들이 실제로 통치할 자격과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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