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적이고 한시적인
자연법칙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개별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절벽아래로 떨어지면 타격을 받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조금도 참작하지 않죠. 누구든 돌에 세게 맞거나 칼에 찔리거나 총알이 뚫는다면 그에 따른 상해를 입거나 죽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일 때나 다윗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죽인 경우나 예수가 죽임을 당한 경우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은 경우나 죽은 사람이 아무리 무고해도 법칙은 조금도 이를 참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착한 사람이니 칼이 자신의 몸을 뚫지 못하겠지, 자신은 믿음이 강하고 신실한 사람이니 독을 먹어도 괜찮다든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천사가 받쳐 줄 것이라든지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겠지 하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인간의 의식에 관한 법칙도 그러합니다. 자신의 이성은 특별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진리를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이 진리를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나 불에 들어가서 타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그렇다면 인간이 아무리 참되고 선해도 도무지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까? 그런데 인간의 의식과 관련하여 개별적이고 한시적으로 작용하는 법칙도 있습니다. 법칙이란 만물을 운영하기 위해 창조주가 마련한 조건이고 만물은 인간 중심원리로 만들어졌으니 창조주는 이를 위해 조정할 수가 있죠.
불이 너무 뜨거워 그 주변에 있는 사람도 타 죽은 그런 불에 다니엘의 세 친구가 들어갔는데 그을리지도 않았죠.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굴속에 들어갔는데 사자는 그에게 입도 대지 않았고 그를 고발한 사람들이 던져졌을 때 뼈도 남김없이 먹어치웠다고 하죠.
상황이 인간의 의식상태를 고려하여 작용한 것이죠.
인간은 4000년간 진리가 없이 방치되었고 진리 즉 좋은 소식에 이르는 통로는 노아, 아브라함, 모세 같은 몇몇 사람을 통해 유지되었죠. 성서에도 선의의 때 혹은 선의를 받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죠.
인간이 진리를 알기가 불가능하지만 어떤 특정시기에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선의를 받은 특정 사람인 경우 심지어 천사의 보호나 돌봄을 받게 되기도 하는 것이죠.
예수 시대의 약 100년간이 그런 면에서 선의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영적 암흑시대에 바로 돌입하였죠. 가톨릭을 비롯한 기독교계의 거짓종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기도 하여 더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언된 바 대로고 그러한 선의의 때는 바로 우리 시대에 있게 됩니다. 전세게적으로 진리가 전해 지죠. 종교 특히 기독교는 인류에게 빛과 진리를 차단하는 주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너무나 비성서적인 사상을 그들의 주요 교리로 삼았지만 별 저항을 받지 않았죠. 지금도 그런 교리인 중 하나인 삼위일체를 받아들이느냐 하는 여부를 정통의 한 기준으로 삼기도 하죠. 천당지옥이나 영혼불멸 교리도 그러하죠.
그러나 지금은 선의의 때라 그들의 거짓이 폭로되었으며 성서의 보급이나 번역을 막을 수 없고 특히 좋은 소식의 전파에 대해서 그러하죠.
그러므로 진리를 순수하게 추구하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과거와는 달리 천사의 인도를 통해서라도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선의의 기간이 곧 끝나가죠. 그렇게 하여 진리를 선택한 사람들이 거의 다 나왔고 죽더라도 거부하겠다는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홍수 때 거부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익사했죠. 그러나 의식에 믿음이나 순종이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았죠. 그들은 결국 죽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올바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방주를 타는 것에 상응하는 행동을 하죠. 올바른 의식상태란 그 행동을 통해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행동을 통해 입증한 그 의식 상태에 따라 영원한 멸망과 영생의 전망이 판가름되죠.
궁극적 멸망의 법칙은 개별적이고 한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이 그 선의의 때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면에 있어서 그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