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것을 보려면

by 법칙전달자

궁극의 것을 보려면


과학의 두 기초는 논리와 관측입니다. 관측불가이론은 소설로 간주되죠. 거시세계는 망원경, 미시세계는 현미경으로 보죠. 양쪽 다 관측의 한계에 부딪히죠.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멀어진다든지 광자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은 볼 수 없으니까요. 광자에 영향을 받는 정도의 입자는 본다는 행위 자체 때문에 관측이 안 되는 것이죠. 보려면 광자를 쪼여야 하니까요.

무한히 성능이 좋은 망원경으로 우주의 끝을 보려 하면 무엇일 보일까요? 우주가 휘어있기 때문에 자신의 뒤통수가 보인다는 유머가 있습니다. 지구 위에서 똑바로 가다 보면 제자리로 오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합니다.


무한히 성능이 좋은 망원경으로 물질의 궁극의 본질을 보려 하면 어떨까요? 뭔가 보이긴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호기심으로 벙 쪄 있는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이죠.

전도서에 보면 창조주가 그분이 하는 처음과 끝을 인간이 알 수 없게끔 인간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칸트도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규명을 한 적이 있죠. 물질계나 정신계나 그 궁극의 본질은 알 수 없죠. 불가지법칙이라 할 수 있죠. 인간의 무수한 한계 중의 하나이죠.

끈이론과 다중우주이론은 소설로 간주되죠. 수학적으로는 매우 우아하게 그 이론들이 설명된다 하더라도요. 빅뱅이론도 그 부류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과학할 수 있는 능력은 조물주에게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도구나 기계를 만들어 결국은 전우주를 개척하도록 하기위해서요. 인간이 백수십억년 전을 이야기하고 수천억년후의 우주는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이론을 내놓는데 인간이 100살도 살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러니 합니다. 인간의 의식에 영원성이 내재되어 있기도 하는데요.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나 창의력, 개발욕구는 무한하죠. 결국은 상상하는 것을 다 이루도록 되어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한계가 있다하더라도요.


그런데 부작용 없는 문명이 발달하고 미래에 무한히 발전할 문명을 지속적으로 누리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정신이 필요하죠. 창조주와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과 아울러요.

지금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고 지시자와 지시이행자가 있는 세상이죠. 피라미드와 같은 계층구조의 세상입니다. 그것은 창조의식과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사랑과 창조의식으로 정상화된다면 외부의 통제자가 필요 없습니다. 전 인류는 한 가족과 같은 관계로 공통창조자가 되는 것이죠. 상상해 보십시오. 주변이 얼마나 아름답게 개발될 것인지요. 과학으로 개발하는 것이죠. 온전한 지혜와 사랑이 반영된 과학으로요. 무기라고는 눈 비비고 찾아도 없는 세상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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