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적인 경험
경험은 아무리 많아야 원칙 하나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원칙은 시공을 초월한 절대불변의 것이지만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경험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감각기관으로 접하는 것이죠. 감성이 하는 것이죠. 몸으로 직접 해보는 체험도 크게는 이 '경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에 대해 보고 들은 경험으로 축구를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축구를 해본 체험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죠. 이런 면에서 경험과 체험을 분리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경험은 고등감각기관으로서 시청각을 사용하여 듣고 보아 접하게 되는 것이죠.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점자를 읽는 경우 촉각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광의의 경험으로 경우에 따라 '경험'에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험은 대체로 감성으로 수용되는 것으로 한정하기 때문입니다. 시청각의 고등감각기관으로서의 사용은 감성적인 것이 아니지요.
바로 진리나 원칙을 이를 통해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취득된 것은 경험적인 것이 아닙니다.
경험이라는 개념이나 기능 자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감성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경험을 경험하고 있다는 표현에 해당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표현도 없는 것이죠.
영적인 진리, 이성적인 진리도 전혀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경험으로 그것의 올바름이나 유익을 확인할 수는 있죠. 반면 오성적 지식, 학문적 지식은 경험 즉 감성으로 확인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죠.
원칙, 표준이라는 것은 인간이 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일치하지 않는, 모든 인간이 정하는 것들은 틀린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법과 문화, 전통 등등 서로 다르거나 변하는 것들은 이러한 원칙이나 표준위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임의에 의해 만들어지고 형성된 것이죠.
나름의 경험을 통해 일시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여 정해지는 것들이고 오래 경험해 보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또 바뀌어지는 것들이죠. 지역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불변의 절대적 원칙을 배우지 않고 심지어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수용되어서는 안 되는 경험적인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죠.
인간의 경험은 전글에서 밝혔지만 행복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의 유무와 정도, 양과 질은 천차만별인데 우열은 따질 수 있을지언정 진위나 선악은 따질 성질이 아닌 것들이죠. 이글의 취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경험을 합한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고 절대적인 원칙으로 자신을 지배할 때 영원히 좋은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등감각기관의, 원칙에 대한 경험이 꼭 필요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