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해야 하지만
중국을 청나라가 지배한 후 변발령이라는 것이 있었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후 단발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는 세금을 요구하고 호적을 등록하라고 합니다. 경우에 따라 특정포고령을 내릴 때도 있고요.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 단계로 준수사항이 주어지기도 하는 것이죠. 변발이나 단발 같은 것은 명령단계일 것입니다.
예수 탄생 시에도 각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을 등록하라는 포고령이 있었죠
예전에는 어떤 지역의 인구가 20만이면 위에는 10만으로 보고하고 실제는 20만의 인두세를 걷어 10만 명 분만 올리고 나머지는 나누어 가진 사례가 많아 국부의 유실과 부패가 큰 문제인 경우가 많았다고 하죠. 로마 황제가 정확한 인구를 알기 위해 포고령을 내린 것은 당연한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기는 했어도요.
가이사(세상의 통치자)는 그 백성에게 임의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고 여러 명령들을 내릴 수 있고 예전에는 부역도 시킬 수 있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는 원칙이 있죠. 이 세상 나라들의 통치는 창조주에 의해 허용된 것이므로 하느님의 통치권을 우선으로 받드는 그리스도인 신권주의자라 할지라도 이에 순종하도록 한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는 원칙은 창조주의 아들인 예수가 정한 것이죠. 세상 정부라는 것은 세금을 내고 호적을 등록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죠. 공복 자원에서 국가의, 복지를 위한 정책에 협조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적 성격의 태도를 취하거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죠. 투표를 하는 것도 그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더 큰 원칙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죠. 사실 가이사라는 것은 모래알 하나 인간의 머리털 하나 만들지 못하죠. 인간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것입니다. 가이사가 요구할 권한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창조법칙에 벗어나는 어떤 것도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죠. 그러나 가이사들은 그런 지식이 없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라고 하거나 해야만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이사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원칙은 상대적이죠. 그나마 창조주께서 그렇게 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명령, 선언, 규정, 창조의 법에 대해 가이사가 주제를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경험에 관한 글들을 연속해서 올렸는데 어떤 학자의 용어에 의하면 선험적인 것이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경험적인 것에 앞서는 것이죠.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른 것, 가변성이 있는 것은 모두 경험적인 것입니다. 국가의 통치자들도 그 법률은 물론이고 헌법차원에서도 자주 변하죠. 제도와 정책들도요. 몇 년도 안 되어 바뀌는 것들이 많은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적인 것들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는 인간 사회에 결코 진정한 복지를 실현할 수 없죠.
선험적인 것이란 다르게 표현하면 신에 의해 주어진 것, 원리적인 것 원칙적인 것, 절대적 표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범주, 사유의 법칙, 도덕률, 각종 영적, 도덕적, 지적, 정서적 기능들이 그러한 것이죠. 모든 법칙, 원리, 성질 같은 것이 다 선험적인 것입니다. 이미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죠. 그것으로 뭔가를 하는 것이죠. 모든 활동을 하고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제각기 다를 수 있는 경험적인 것으로 그것을 바꾸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지극히 무지하고 어리석어 그런 식의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의 망조가 날 수밖에 없는 시도라는 인식조차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창조의 법칙을 거스리는 것을 요구할 때 그에 복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허용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종교를 허용한다고 해서 종교를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고 투표를 권장한다고 해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전쟁연습이나 군대와 같은 살인조직에 가담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것이죠. 원래 그들은 그런 것들을 허용하거나 요구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선험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그들이 속한 각 나라에서 이런 면으로 많은 시험을 받았죠.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죽음을 불사하고 거부하였습니다.
선험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을 구별 못하면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