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심각하게

by 법칙전달자

영적으로 심각하게


영적인 면으로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탈세속적인 삶을 결정하고 수도사나 수녀, 승려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인들의 물질과 쾌락, 권세를 추구하는 삶이 허망하다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불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많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혼인도 하지 않고 탈세속적이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죠. 은둔하기도 하면서요. 의복이나 숭배방식에도 공통점이 많죠.


수녀복과 승복에서도 공통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불교에서 수행이라는 것이 있고 장기간 종교적 명상 혹은 선(禪)이라는 것을 하기도 하죠. 소위 큰 스님이라는 사람들은 어록을 남기기도 하고 나름의 종파를 창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죽으면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소신공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등신불이라는 소설에서 다루기도 하죠.

영적 모색의 일환이기도 한 것입니다.


방향은 좀 다르지만 세속을 등지고 신선처럼 자연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삶을 산 사람들도 있다고 하죠. 도교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선을 하면서 극단적으로는 소신공양을 하는 사람에 비해 번뇌에 시달리는 것은 덜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종교의 색채도 많이 달라졌죠.


세상은 양극단이 공존하고 있는데 무신론, 진화론, 유물론이 대세이고 공적이죠. 종교인이라고 표방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실제의 삶은 무신적 유물론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부 신접무당들은 영적인 존재들과 실제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죠. 무신론자가 되기가 불가능한 것이죠. 그러나 그 양측은 세상에서 매우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근원적으로는 한 통속입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살지만 아직도 극소수는 그런 세상과 분리된 것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 역시 세상에서 배척받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존경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지원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인 것이죠.


또한 명상을 통해 자신이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적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서는 여러 군데에서 그들의 그런 방식의 추구는 진리에 이르는 방식도 아니고 진정으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되어 있습니다. (골로새 2:23, 딤전 4:2, 로마 10:3)


예수나 예수의 제자들도 그런 방식으로 삶을 살지 않았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외면상 존경스러워 보이고 지혜롭게 보일 수 있지만 인간의 철학적 성격의 생각과 악한 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거의 모든 면에서 양극단과 그 사이에 위치하는 것들이 뒤섞여 있어 혼란 그 자체이죠. 정치와 종교에서만 그런 현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는 노력을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두 멸망으로 인도하는 큰길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창조주의 말씀과 그 인도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 7:13, 14) 단지 불법. 법을 거스르는 것일 뿐입니다. 모두 창조주와 그 말씀 그리고 창조를 인정하지 않는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전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으로 살면서 그토록 그 점에 대한 인식이 없을 수 있는 것입니까? 세상을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들 모두는 빛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면에 있어서는 공통적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하나로 연합되어 있죠.


곧 있을 멸망이 스스로가 확고히 그렇게 선택해서 이르게 되는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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