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

by 법칙전달자

더럽다


손톱을 이루고 있는 분자는 당연히 손톱이 있는 그 위치에 있을 것입니다. 그 분자가 냉장고 속의 사과 안에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양자 차원에서는 즉 손톱을 이루는 양자는 우주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존재할 수학적 확률이 0인 곳은 없다고 하는 것이죠. 그 수학적 확률을 계산하는 공식도 나와 있고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 언제부터인가 실려져 있습니다. 불확정성은 이제 원리로 확립되어 있습니다. 법칙인 것이죠.


전자도 양자의 일종인데 더러운 전자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자는 더럽다는 속성을 지닐 수 없는 것이죠.


정결함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라서 인간의 무의식적인 관념상 더럽게 느껴지는 것은 견디지 못합니다. 쓰레기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죠. 방안에 쓰레기통에 며칠을 머물러 있어도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죠. 쓰레기는 쓸모없는 것일지언정 더럽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안에 대변이 있는 것은 그것이 자기 것이라도 감당하지 못하죠. 검은 비닐 안에 담겨 있고 꼭 묶여 있어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똥이라고 하면 더럽게 느껴져 옆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해 합니다. 똥이란 말만 들어도 더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다른 동물의 것보다 인간의 것이면 더 더럽게 느껴지죠.


그런데 그것이 가장 가깝게 몸 안에 있는 상태에서는 자신의 것도 상대의 것도 그렇게 느끼지 않죠. 사람을 안으면 그의 대소변도 같이 안는 것인데 대장 안에, 콩팥에 대소변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여 더럽다고 느껴 피하는 일은 없습니다.


꼭 대소변뿐 아니라 심장이라도 그것이 몸에서 분리되어 길가에 버려져 있을 때 역겹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머리도 목에서 잘려 분리되어 있으면 끔찍하고 흉측하게 느껴지죠.


침도 자신의 입안에 있을 때는 더럽게 느껴지지 않죠. 소위 딮 키스라는 것을 할 때 혀로 서로의 침을 핥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쪽쪽 빠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은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도 더럽게 느끼는 것 같지 않죠.


그런데 자신의 침이라도 입 밖으로 나와 입술에라도 묻으면 더럽게 느껴져 휴지로 닦게 되는 것입니다. 뱉은 침을 다시 삼키는 것을 매우 역겹게 느끼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재위치에 있지 않고 이탈된 것은 더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상태가 더럽다고 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는 것이죠. 합당한 위치에 있지 않는 마음상태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배우자에 대해 성적으로 탐닉하는 상상이나 욕망을 가진 것이 드러나면 더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재산이나 권한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한다는 것이 드러나면 특히 최고통치자 앞에서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그것만으로 목이 잘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역심을 품었다고 하는 것이죠.


생각이나 마음이 합당한 위치에 있지 않고 이탈하면 더럽고 역겹고 느껴져 배척받게 되는 것입니다.

더러운 인간이라고 비난받는 경우 때가 많은 인간이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죠. 부당한 욕심, 탐욕을 품었음이 드러날 때 그러한 판단이나 정죄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양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각이나 마음은 반역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모하고 어처구니 짝이 없는 이탈성인 것들이 제멋대로 떠오를 수 있죠.(예레미야 17:9) 인간은 거짓을 참으로, 악을 선으로 그리고 추하고 더러운 것에 대해 스스로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주제넘은, 참람된 즉 더러운 생각을 품었다고 해서 그를 혹은 그러한 무리를 제거해야 되겠다고 하여 토벌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허다하죠.


어떤 더러운 행위를 행한 것이 드러나면 가족이라고 해도 소위 명예살인이라는 것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적으로 더럽고 역겨운 존재는 가족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왕이 자신의 딸을 공개적으로 참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이러한 더러움은 성적으로 금전적으로 또 정치(권력)와 관련하여 일상적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재위치에 두는 것을 오히려 힘들어하죠.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 대한 천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고 이는 자유의지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 통치에는 다스림이 포함되어 있죠. 징치가 수반되는 것입니다. 사형에 처해야 하는 경우가 부득이 생기는 것이죠.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이는 통치자로서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세속통치자들도 범죄, 조폭, 마약 등등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런 것을 뿌리 뽑는다고 관련자들을 찾아 징벌하고 사형에 처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권리와 의무의 행사로 간주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그렇게 해야 할 천부적인 권한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정신의 거짓과 악에 대해 그러해야 하고 더러움에 대해 그러해야 하죠.


불확정성에 따라 어떤 더러운 생각이 떠오를 수학적 확률도 0이 되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 자체는 더러움이 아닙니다. 음식이 몸에서 똥이 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버리지 않고 즉 배설을 시키지 못하고 오래 머무르게 하면 결국 그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죠.


그러므로 그것을 방치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을 더러운 인간으로 만들어 정당한 권한을 가진 존재에게 배척되어 제거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쓰레기 같은 쓸모없고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해야 할 뿐 아니라 더러운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쓰레기 같을 뿐 아니라 대표적으로 더러운 존재들이 정치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타인에 대한 통치권인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더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겨운 존재들은 당연히 제거되어 마땅하고 곧 그렇게 됩니다. 세상을 똥통으로 만들어온 자들이죠. 정치적인 관심 자체가 똥 같은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외적이고 매우 아이러니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본질상 그보다 더 더럽게 간주되는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성적으로, 금전적으로, 정치적으로 더러운 것보다 숭배에 있어서 재 위치에 있지 않는 더러움이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와 종교인들이 그 점에서 재위치(창조주에 대한 숭배)에서 가장 크게 이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멸망이 정치의 멸망보다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나라들보다 종교의 멸망이 선행되는 것이죠.

일부 공산국가에서는 종교가 더러운 것이라 하여 말살시킨 사례들도 있고 그 상태가 여전히 지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보통 창녀 혹은 매춘부를 성적으로 더러운 존재로 간주합니다. 그런 직업을 더러운 직업으로 간주하고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기도 하죠. 종교라는 것이 본질상 그 이상으로 역겹고 더러운 것입니다.


그 더러움을 포장하여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게 하고 아름다운 포장으로 장식하여 꼭 필요한 것처럼 속이려 해도 그 속은 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성서에서도 반복적으로 똥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왕상 15:12, 에스겔 6:4)


인간은 기본적으로 정치나 종교와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더러운 존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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