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들인
큰돈을 지불한 것일수록 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지식을 얻는데도 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비나 학원수강료, 도서 등등이 있습니다. 초청강사의 강연을 듣는데도 그 초청기관에서 강사에게 강의료를 지불하죠. 대학에서도 교수들에게 고액의 급여를 주게 되죠. 그 유명세에 따라 더 큰 비용이 지출되겠죠.
교회에서 설교를, 절에서 설법을 듣는 경우 강의료 액수는 정해져 있지 않겠지만 연보나 시주에 대한 부담이 있죠. 물론 부담이 아니라 기꺼운 기부가 될 수도 있죠.
정보를 전달하거나 지식을 전달하는 일, 오늘날에는 지식산업을 제4차 산업으로까지 구분을 합니다. 그리고 직업적으로 그 일과 관련된 사람들도 많이 있죠.
이처럼 돈을 들여 얻게 되는 지식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기술적, 학문적 지식들은 실용적인 가치들이 있고 지식 전달에 기여한 사람들이 합당한 대가를 얻는 것이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삶의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영적 지식들은 어떠할까요?
마태 10장 8절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십시오.
우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영적 진리는 먼저 예수에 의해 전해 졌습니다. 그것을 듣기 위한 강의료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청강자들은 기적의 식사를 제공받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는 병을 즉각적으로 완치하였습니다. 그런 식의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치료비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도 병 고치는 능력이나 전혀 배우지도 않은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들을 전혀 값없이 부여받았습니다.
질병치료나 외국어 기능의 습득에 있어서도 돈 한 푼 들어가지 않은 것이죠.
사실 인간은 그 생명에 대해서 나중에라도 값을 치러야 하는 경우는 없죠. 자녀들은 부모에 대해 믿을 수 있고 영양 많은 음식이나 편안한 주거공간을 제공받으면서 비용을 요구받지 않죠.
그것이 원래 지식이나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본연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고 봉사하고 제공하는 것이 오히려 보람인 것이죠. 뭔가 바란다는 동기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것은 공식적으로 값이 책정되어 있죠. 거저 얻으려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뻔뻔한 것으로 간주되며 합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발적인 기부 같은 것은 선행으로 간주되죠.
어떤 것들의 가치는 대개 수치로 환산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죠.
돈 세상이기 때문에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죠.
많이 지불되는 것이 가치가 높다는.
그러나 오늘날에도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무료로 전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죠. 그것이 가치가 없는 것이거나 미혹적인 어떤 것이 있는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이죠.
대개 사람들은 동료에게 유익한 것을 전달하고자 하면서 드러내놓고 수익을 도모하거나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동료인간이 유익을 얻는 것이 먼저라기보다 자신이 취할 이득이나 이윤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죠.
많은 주목이나 관심을 끌 수 있게 홍보나 광고를 하고 포장을 하죠. 매체에 정보를 올리면서 구독이나 좋아요를 습관적으로 채근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수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한 것이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모든 활동의 동기가 이윤추구가 되는 것이죠. 대부분의 활동들이 그것이 수입과 연계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돈 되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에 필수인 본연의 순수성을 잃은 것입니다. 세상을 매우 혼탁하게 만들고 인간을 기형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거의 좀비의 형상이 되게 하는 것이죠. 돈돈 하면서 돈을 빨아먹으려고 어슬렁거리는 괴물들이죠. 사람들은 대개 이기적이고 물질적입니다. 사람관계도 그걸 기준으로 하죠. 돈 되는데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의 교제는 시간낭비로 여기죠.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경우는 물건을 얻거나 서비스를 받거나 쾌락을 누린다는 전제하에서죠.
오히려 사람들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본연의 가치를 배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온유, 겸손, 사랑, 인내, 용서 같은 미덕이나 도덕성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죠.
사랑을 하긴 하는데 돈이나 쾌락이나 어둠을 사랑하는 것이죠. 악을 사랑하여 싸움을 즐기는 것입니다. 게임도 거의 싸우는 것이죠. 보는 드라마나 영화도 싸움이 있어야 재미있죠. 통치자들이 전쟁을 쉽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말을 사납게 위협적으로 하는 이유이죠. 정치인들도 그 말이 얼마나 거칩니까? 전투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낯선 사람들끼리의 처음 회식자리에서도 누군가가 구성지게 욕설을 늘어놓으면 드디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면서 오히려 친밀감이나 신뢰감이 생긴다는 것이죠. 같은 류의 좀비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자들은 이러한 세상 상태를 한탄하면서 이마에 생존의 표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에스겔 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