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통찰력들
어떤 문구에 반영되어 있는 영적 통찰력들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시 같은 어떤 문학적 글귀나 어떤 노래의 가사들에서도 신묘한 감성적 통찰력을 느끼게 하는 부분들이 있죠. 곡의 어떤 대목들에서도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 깃들여 있는 물리적 통찰력도 혀를 내두르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미학적 통찰력에 대해서도요. 소위 신비로운 영감을 받은 것이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죠.
그런 통찰력이 발휘될 수 있는 인간의 두뇌와 그 발휘된 것에 대해 감탄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든 근원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특별하고 비정상적인 것일까요?
사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감사와 찬양의 감정에 젖어 그것이 주는 행복감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창조주의 통찰력의 심오함은 인간의 언어로는 형언할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성서에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라거나 천사의 언어가 언급되어 있죠.
인간에게 통찰되기 전에 그런 것들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들이죠.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통찰하는 기능이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창의적인, 감성적인, 학술적인 통찰력 등등이 있는 것이죠.
지각에 번쩍 섬광을 일으키며 예술적인 언어를 발상해 내는 그런 재능들을 일종이 달란트라고 하는 것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타인에게 경탄을 일으키게 하고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지성적, 감성적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능이 완전히 죽어 있습니다. 대신 돈이나 정치 같은데 도착적인 욕심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죠. 말하자면 영혼이 병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문화가 추악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죠.
어떤 영적인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가올, 세상의 멸망을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눈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이 필요 없습니다.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두움이기 때문이죠. 그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잠깐 살다가 생을 마치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