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갈망

by 법칙전달자

어떤 갈망


동물들은 본능에 따라 행동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죠. 인간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나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그와 같은 본능에 의한 것인데 그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지배되어 있는 것이라면 어떤 면에서 다른 동물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을 수 있습니다.


공의 혹은 정의는 인간의식의 잠재적 속성으로 일종의 본성 혹은 본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아니 대부분의 인간에게 무의식적으로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죠.


공의란 필요한 정도만큼 공급되거나 과잉의 부분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일반적인 의미는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고 선을 행한 만큼 상을 받는다는 것이죠. 가치에 상응하는 값이 치러져야 한다는 개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가지요금, 부당요금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큰 빈부격차를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이죠. 불필요하게 많이 가진 사람에게 빼앗아서 없어서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주아들이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착취하므로 부르주아를 타도해야 한다는 사상도 이에서 나오는 것이죠. 한편 그가 재능으로 기여한 만큼, 노력한 만큼 부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공의의 원칙과 일치하므로 빈부격차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양극단의 사상이 모두 공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한편 정치판에서 어떤 정치인이 죄지은 만큼 벌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고 한편으로는 죄에 비해 형이 과하다고 주장하는 쪽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공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판결을 받아 구금되는 것을 갈망하거나 그렇게 되면 환호성을 지를 사람들도 많죠.


능력과 자격에 비해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나면 짜증이 나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어 심지어 그 사람이 통치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라를 떠나 있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구호 상으로는 공정, 정의를 외치지 않는 정치인은 없는 것이죠.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기는 하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이 마치 짐승처럼 본능적으로, 무의식적으로 공의라는 본성에 지배되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짐승에게는 그런 본성이 없기는 하죠. 그래서 짐승과 인간하고 다르다고 주장은 하고 있기는 하죠.


그러나 공의를 이성적으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면에서 죽기 위해서 태어난 짐승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후 2:12, 유다 10)


창조주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필수적인 3대 특성 중 하나가 공의입니다. 다른 것들은 헤세드(충성스러운 사랑, 혹은 사랑의 친절)와 겸허이죠.(미가 6:8)


공의는 창조주의 표준에 따라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능에 따라 임의로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중구난방이 되는 것입니다. 제각기 나름의 기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어서 인간들은 서로 그것이 정의라고 하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공의라는 임의의 개념에 입각하여 책도 쓰고 이념도 만들고 정책이나 제도, 법을 만들지만 그것이 창조주에 의해 심어진 공의라는 본성 때문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공의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하는 창조주의 기준을 무시하고 임의로 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죽는 원인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 생각도 없습니다. 진화론 같은 무신적 유물적 사상에 따라 현생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죄지은 정치인이 합당한 벌을 받고 능력 없는 통치자가 그 권력에서 내려오길 갈망하여 정치판에 열정을 쏟기는 하지만 개돼지 같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소위 이성 없이, 무지성으로, 제멋대로 그렇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짐승처럼 그렇게 살다가 죽게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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