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열매
믿음을 ‘종교적 신앙’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적 기능 중 하나입니다. 심장이나 허파가 없는 사람이 없듯이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이죠.
‘설이나 ’론‘인 것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화론이나 빅뱅설 같은 것이죠. 빅뱅설도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그 근거로 삼는 적색 편이나 배경복사 같은 것도 그와 상충되는 다른 이론을 주장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죠.
과학에 신개념이 조금이라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같은 것도 일종의 믿음입니다. 모든 론은 궁극의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본질상 종교적 신앙이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진실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원칙이 있죠. 열매로 안다는 원칙입니다. (마태 7:20)
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삶이나 행동의 질로 그 믿음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사실상 무신론자들이 지배합니다. 겉으로는 종교를 가진 것처럼 가장해도 유물론이나 진화론을 믿습니다. 국경선을 만들어 이동도 자유롭게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서로 싸웁니다.
가장 종교성이 강한 이슬람국가들도 정치는 무신적으로 합니다. 끊임없이 테러와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이죠.
그리고 기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의 사생활이나 세속적인 면면들, 역사에서의 그들의 행적, 전쟁의 지지나 참여 등등 그들이 맺는 열매는 그들이 믿는다고 내세우는 교리 자체가 고려의 여지없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들은 말씀을 믿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죠. 어떤 계산적인 이유, 이기적 목적으로 종교가 있는 것처럼 위장할 뿐이라고 톨스토이가 선언한 바와 같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믿는 것은 세속적인 권력이나 돈 같은 것들입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 하는 행동들을 보면 명백히 알 수 있죠.
묻지 마 살인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이 강자의 악자에 대한 신성한 권리의 표현이라고 정당화하기도 하죠. 폴포트 같은 사람은 부르주아들은 하루라도 일찍 죽어주는 것이 마지막으로 인민을 위하는 선택이라고 한 바 있고 조금의 양심이 가책도 없이 수백만 명을 그것이 일상 업무나 되는 것처럼 죽였다고 하죠.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도요. 기독교인들도 그런 식으로 살상해 왔습니다.
이는 바로 그들이 그 믿음에 따라 맺은 열매들입니다.
어떤 교리나 ‘,,. 설’, ‘... 주의’ 같은 것들을 이론적으로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다면 그것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삶에서 맺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언행의 원리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혼란과 혼동 그 자체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무슨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의식화 되어 있죠.
그런 세상에 속한 사람 중에 무슨 참이나 선,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습니까? 없어도 전혀 없습니다. (시편 14:2,3)
자신에게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믿음인지 진지하게 살펴보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