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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상학

존재(存在)

by 법칙전달자

존재(存在)


存, 在, 有 모두 ‘있음’, ‘있다’이죠.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의미 부분으로 나타내면 ‘있’이 되죠.


영어로는 be 혹은 being이 되죠. 뜻풀이는 안 됩니다. 대표적인 범주입니다. 순수개념이기도 합니다. 오직 한 가지 의미만 내포되어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어떻게 존재하죠. 존재만 있는 존재란 없습니다. 있는 것은 반드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즉 성질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질도 범주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이건 다수이건 수적인 측면이라는 것이 없을 수 없습니다. 또한 그것은 어떤 상태로 존재해야 하죠. 수, 상태 혹은 양태도 범주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 있어야 하죠. 위치도 범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에 존재론이라는 것이 있죠. 최근에는 과학적으로 답을 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나는 실제 존재하는 것인가?”, “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등등. 존재에 관한 온갖 물음과 주장들이 있죠.


의심에서 출발한 모든 물음과 추리는 자가당착적인 것입니다. 모두 이미 범주를 사용하여 묻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존재는 물음을 가질 성격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유의미한 결과를 결코 도출하지 못합니다.


단지 사변적인 언어유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설명에도 그 설명에 필연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전제 자체와 상충되는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마치 역설적인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 경우도 있죠. 무엇을 허상이나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그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재는 론이 될 수 없습니다. 존재론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에 대해서 마음껏 거짓말을 펼쳐 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도 그렇습니다. 론이나 과학이 될 수 없죠. 창조론이라는 것은 창조에 대한 거짓말을 의미합니다. 창조과학이라는 것은 더 심각하게 그러합니다.


론이라는 것은 아무런 확정적 진리를 알려주지 못하며 조금의 실용적 가치도 없습니다. 언어유희 정도가 아니라 언어의 범죄적 오남용입니다.


현상에 대한 참되고 만족스러운 설명을 해주고 당연히 실용적 가치가 파생되는 것을 ‘... 론’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 주의’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전혀 인간이 존재케 하지 않은 ‘... 한 존재’입니다. 그 존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떤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지도 모릅니다.


관련된 모든 주장들은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 주장 안에 자기 파괴적인, 자가당착적인 요소가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주장들은 또 타인들에 의해 비평적으로 분석됩니다.


만물의 바탕이 되는 것들은 절대적인 견고함으로 존재하고 작용합니다.


인간은 그 근원에서 언명된 것들을 반드시 먼저 배워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정신에 형성된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신학으로, 철학으로 형성된 모든 것들을요.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추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찬가지로 견고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창조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존재가 단지 지속될 뿐 아니라 더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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