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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04. 2022

죽는 자의 의식구조

죽는 자의 의식구조     


전쟁에서 병력이란 무생물적인 자산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도록 세뇌시키죠. 전사자의 수는 그저 수치에 불과하죠. 러시아의 유명한 군가에는 전장에서 너의 생명이나 적의 생명이나 아까워하지 말라는 가사가 있죠. 자타 공히 인간으로 보지 않는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선에서 서로 죽이고 죽는 군인들의 의식구조만 그러할까요? 군대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병역을 기본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때 지성 있고 교양있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접촉에서 기대되는 것은 매우 섬세한 면에 있어서까지의 배려와 존중입니다. 말과 표정, 제스처 등을 통해 그런 점들이 듬뿍 반영되죠.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죠. 비난이나 빈정거림 정도도 심각한 부덕으로 간주되죠. 정상적인 의식상태인 사람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인 것입니다.     

 

욕을 하고 주먹으로 가격하는 것 정도도 끔찍스러운 죄악이죠. 인간 사회에 결코 영원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죠. 경악스러운 테러인 것입니다. 욕을 하는 의식 자체가 공황스러운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사악한 상태인 것이죠.      


그런데 살인을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구조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아니 의무적이고 심지어 선행으로 여기는 그러한 통탄할 의식구조는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인간은 사실 게임으로. 드라마로. 영화로 살인을 즐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극적인 살인 장면이 없으면 재미가 없는 것이죠. 심지어 파괴욕이나 살인욕이 본능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물론 동성애 유전자가 있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거짓입니다. 게임으로 마음껏 살인욕구나 파괴욕구를 해소해야 현실에서 그런 행위를 할 가능성을 낮춘다는 주장도 있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대나 상대집단을 죽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인류는 세뇌되어 왔습니다. 진화론이나 유아론, 유물론, 무신론 등의 거짓철학이 한 몫을 해왔죠. 세계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라는 것이죠. 약자를 죽이는 것은 강자의 신성한 권한이라는 주장도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길어지면 죽이는 자도 결국은 죽게 되지요. 칼에 베이거나 총알에 뚫리거나 하는 방법으로 죽어왔죠. 죽이는 자나 죽는 자나 이미 세뇌로 인해 뇌의 상태가 정상적인 인간의 것이 아닌 상태가 된 것입니다, 최고 통치자와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살육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더라도 연관된 모든 사람이 그러한 것입니다.      


사람의 의식에는 영원성과 무한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육의 장에 연루되어 있다면 이러한 특성을 거부한다는 면에 있어서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존엄성을 스스로 모욕적으로 짓밟아 버리고 자신을 짐승으로 격하시킨 것이죠. 본질상 인간과 짐승이 다를 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이죠.    

  

왜 이렇게 통탄할 지경이 된 것입니까? 창조주만이 그것을 알고 있는데 세상이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에 대한 그릇된 의식구조를 지닌 인간정부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택한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영원히 소멸될 때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늘날 그점에 대한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는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알기를 거부하고 살인을 당연히 여기는 세상이 좋다고 고집스럽게 그것에 머물려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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