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과 실제
인간에게 이론적이고 원칙적인 것보다는 실제 느껴지는 것이 영향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전자를 뜬 구름 잡는 환영으로 여길 수 있죠.
우주에 처음 나가서 보는 삭막한 상황은 신이 존재하다는 생각을 그러한 것으로 판단하게 하는 것이죠.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를 관찰하게 되는 경우에도요.
체감이라는 것은 기후와 관련하여 주로 쓰이죠. 온도나 습도가 기기상의 측정으로 나오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것의 괴리를 표현할 때 많이 쓰이죠.
비약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록 비이상적이라 할지라도 체감되는 현실에 실제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밀림을 지날 때는 벌레에 물리지 않는 약을 바르고 맹수의 공격에 대비한 무기를 소지할 필요도 있을 것이고 여러 기상사태나 돌발상태에 대비한 비상 물품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무리 종교적 신앙이 강해도 그런 경우에 기도를 통한 신의 도움으로 대응을 하겠다는 생각은 일종의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에 대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가 되지 않았을 때 인간 개개인이 일시적으로 처한 위기 상황에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를 해도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생명을 잃을 상황이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이죠.
이런 현상들은 신의 부재의 증명이 결코 아닙니다. 기독교식의 신앙이 신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이 공상적으로 고안해 낸, 신학 같은 것으로 구축한 신 관념과 실제 창조주의 뜻과는 매우 큰 괴리가 있는 것이죠.
기독교의 교리는 성서와는 전혀 다르며 그들의 신학 체계는 실제의 창조주와는 도무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실제로는 창조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론적으로는 창조론이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할지라도 창조는 전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신론자라고 주장해도 실제적으로는 무신적입니다.
아직도 자신은 진실로 예수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망상적일 뿐입니다. 종교적 신앙이나 믿음 자체가 그러합니다. 종교, 기독교, 유신론, 구원론, 천국론, 창조론, 창조과학 등등 관련된 모두가 그러합니다. 가톨릭이건 개신교건 그들의 모든 교리체계 신학체계가 그러합니다.
그들 모두가 무시하는 것은 실제 예수와 그분의 왕국, 천년통치입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삼위일체 신이나 영혼 불멸 같은 것이죠,
왕국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 일에 대해 아무리 간절하게 기도를 해봐야 조금의 응답도 없습니다. 혹 응답이 있어 보여도 그것은 귀신에 의한 것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체감하는 현실은 실제 현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실제로 철저히 무시하는 실제통치자로서의 예수와 하느님의 왕국은 가장 현실적입니다. 인간들이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요.
또 한 번 비약을 하면 체감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유행을 한다고 하면 모임에 가지 말아야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모임에서 집단적으로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코로나에 걸리는 것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현실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누가 22:36입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식량 자루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 사십시오.
어떤 때가 오기 전까지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5:22입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가장 실제적으로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현실 문제에 대해 신앙적으로 대응하라고 암시적으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체감적으로는 왕국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세상은 무신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체감력이 있는 사람은 현실은 현세적인 방법으로 대응할지라도 그 영적인 것에 더 실제적으로 대응합니다.
자신의 인간성 자체를 왕국에 합당하게 변화를 하고 왕국을 맞이하는 행동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