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그 언어가 비록 기록 당시의 인간들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비유적 표현이 많더라도 성서는 본질적으로 참된 지식을 전달합니다.
옷을 입을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 쾌적한 온도가 항상 유지되고 성기의 노출에 대한 부끄러움도 전혀 느끼지 않고 벌레가 무는 일도 전혀 없다면 그래도 인간은 옷이라는 것을 입지 않고 지낼 것입니까?
그런 경우에도 옷의 필요를 인간이 느끼게 될 것인지는 여부는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인간의 의식상태로는 모두가 나체로 지내는 단조로운 상태를 부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데 꼭 그러한 의식에 근거해서 그렇게 추측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필요라는 것은 인간이 점진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인데 그 원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말은 인간의 불순종과 무지로 인한 것입니다. 당연히 성체가 즉 닭이 먼저입니다.
인간도 처음에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완전체에서 출발하였죠. 성인 남녀로서 갑자기 삶을 출발한 것입니다. 소위 시간이 소급될수록 엔트로피가 낮아진다는 상식과도 일치한 것이죠,
인간의 언어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하나의 완전한 언어를 사용하였죠.
기능이 완전하다는 것은 단지 그렇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런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이죠. 오히려 필요를 정상적이고 온전하게 느낀다는 것을 의미하죠. 필요라는 것은 부족이나 결핍의 개념을 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또 필요를 느껴야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바로 그것을 위해 마련된 온갖 정신적 신체적 기능을 사용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에 각종 도구의 필요와 악기의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창세 4:21,22) 지구에는 지하자원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자원들을 도처에 갖추고 있습니다. 실용성은 없어 보이는 것 같은 보석들도 즐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 2:12)
옷에 대한 필요도 느낄 수 있고 장식에 대한 필요도 그러하였을 수 있죠.
인간이 범죄 후에 땅도 저주를 받아 에덴조차도 유실수가 즐비한 그런 곳이 아니었고 식물들은 인간이 애를 쓰고 고생을 해야 열매를 산출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죠. (창세 3:17~19, 5:28)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에도 지구의 대부분은 삭막하고 혹독한 상태여서 인간이 전투를 치르듯 개적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창세 1:28)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부정적인 시각을 갖은 사람들이 성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진실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창조의 목적이 처참하게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지금처럼 창조에 반역적이 되어 그들의 자유의지를 악하게 사용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인간과 세계는 프로그램된 대로가 아니라 의지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 의지는 제지받지 않습니다. 결과가 아무리 끔찍하다 해도요. 인간이 멋대로 세상을 운영해 온 것이죠.
인간도 그러하다면 창조주는 오죽 더 하겠습니까? 그분도 의지 즉 뜻이 있고 반드시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악한 세상을 멸하고 순종하는 사람들로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도 경우에 따라 전쟁도 불사하죠. 나름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요.
창조주의 이름인 여호와의 의미는 ‘되게 하다’입니다. 그분은 그 창조의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되게 하실 수 있죠.
그러나 만물을 운영하기 위해 만든 법칙을 스스로 깨트려서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활용하여 그렇게 하죠.
어떤 인간들은 비록 극소수일지라도 창조주를 옹호하고 그분의 창조목적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자발적으로 나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죠.
바로 그런 사람들을 사용해서 그렇게 합니다.
지금도 개개인들은 원한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창조의 목적인 영원한 행복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