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총독 그리고

by 법칙전달자

왕과 총독 그리고


그러니 이 일을 행하십시오. 곧 왕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들 대신에 총독들을 두십시오.(열왕기상 20:24)


그 당시 시리아에는 대왕이 있었습니다. 그 휘하 지역의 어떤 곳은 왕을 두고 어떤 곳은 총독을 두었죠. 로마시대에도 그러하였습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총독은 중앙에서 녹봉을 받는 관리였습니다. 재판도 중앙의 법대로 해야 하였고 세금도 거두어 그대로 전달하였습니다.


반면에 왕은 자율권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임의로 재판을 하고 세금을 거둘 수 있었죠. 중앙에는 조공을 바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시에는 왕이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휘하의 책사들이 위 구절과 같이 제안한 것입니다. 수용되었죠.


국가들마다 나름의 통치, 정치제도가 있었죠.


고대에 상당기간 국가의 체계가 잡히지 않았거나 왕제도가 없었던 기간들이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왕제도가 확립된 나라들도 있었지만요. 이스라엘도 족장시대, 사사(판관) 시대가 상당기간 있었죠. 사람들은 좀 더 임의적이고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한국에도 기원 4,5세기 경이돼서야 국가로의 기틀이 잡혔다고 합니다.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하게 왕제도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세금도 내야 하고 군대도 두어야 하고 필히 압제도 행사되어야 하는 등의 폐단이 있다고 힘들 것이라고 경고를 하였지만 그들의 고집에 못 이겨 사울로부터 시작되는 왕정국가가 되죠.


솔로몬 같은 명군 시대에도 압제가 심했는데 그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여 숨을 죽이고 있다가 그가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지 마자 부담들을 경감해 달라는 요청들을 득달같이 하게 되었죠. 받아들여지지 않자 각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나라는 쪼개졌습니다.


사법제도는 로마시대에 매우 잘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업무는 법에 의해 엄격히 처리되었죠. 사도 바울은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그의 재판을 늦추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로마인인데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공개적으로 매질하여 감옥에 집어넣더니, 이제는 슬그머니 내보내겠다는 것입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라고 하십시오.(사도 16:37)


저는 카이사르에게 상소합니다!” 그러자 페스투스가 고문단과 상의한 다음 말했다. “당신이 카이사르에게 상소했으니 카이사르에게 갈 것이오.”(사도 25 : 11,12)


예수는 혹시라도 그의 사형이 늦추어질까 봐 그 당시 총독의 조처들에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갈릴리지역의 왕인 헤롯은 임의로 침례자 요한을 참수했는데 왕이었기에 재판에 대한 자율권이 어느 정도 있었고 또 요한이 로마시민도 아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통치제도나 조세제도에 복종할 의무가 있고 또 활용할 권한도 있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분리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낼 것은 내고 요구할 것은 요구할 수 있었죠.

경제 금융 상업제도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고전 7:31절입니다.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십시오.


최대한 이용하지는 않더라도 이용할 수 있었죠. 예수 자신도 화폐나, 장사, 사업 그리고 은행의 이자 등을 소재로 비유들 들기도 하였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사도 바울도 타르수스에서 천막사업을 하는 유망한 가문에서 테어났으며 그때 알게 된 천막 깁는 기술로 전파활동을 하면서 자력으로 생계를 해결하였죠.


또 그는 그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는 데 총독도 동문이었다고 하죠. 교육제도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세속 국가에는 나름의 통치시스템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왕국에도 당연히 그러하겠죠. 그러나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습니다. 그 통치자의 수는 예수를 포함하여 144,001명인데 세계를 통치할 수로서 적합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모든 통치자 그룹의 수는 수십만에 해당한다고 하죠.


하늘정부의 통치자들은 부서를 나누어 제도들을 정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천사보다 지위가 높아진 영적 존재들입니다. 대신 땅에는 그들이 정해준 지침에 따라 일선 현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인간 행정관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 방백이라 표현되어 있기도 한데요.


그러나 하늘의 통치자나 땅의 행정의 종들이나 이 세상 통치자나 고위 관리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입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봉사차원에서 섬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금을 걷지도 군대를 두지도 않습니다. 국가는 없고 행정지역만 있을 뿐이죠. 그런 양질의 인력이 천 년간을 봉사한다고 하니 얼마나 안심이 됩니까?


그런데 사실 이번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누적해 왔습니다. 오늘날 하느님의 왕국의 지상조직에서도 매우 요긴하게 사용하죠. 놀라울 정도로 능률적으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현 세상의 여러 문물 중에서 가치가 뛰어난 것들도 많습니다. 인류의 소중한 자신이 되는 것들이죠.


전도서 2:26입니다.

참하느님께서는 그분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주시지만, 죄인에게는 모으고 쌓는 일만 주시어 참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 내주게 하시니.


곧 사람들은 그런 가치 있는 자산들을 모두 남기고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왕국의 지상역역에서 그것을 계속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발전 속도는 훨씬 빨라지겠죠.

천녀의 통치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상이요.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역사이상으로 확실성이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성서에는 그런 식의 화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이를 지지하는 시공식빵의 비유를 들고 있죠.


천년! 눈 깜빡하는 순간에 지나가는 세월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듣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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