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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by 법칙전달자

살아야


말씀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무시하는 것은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생명 즉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곧 죽어 없어질 인간 생명은 생명이 아닙니다. 천년 후에 죽든 만년 후에 죽든 죽을 목숨이면 지금도 인간의 목숨이라 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100년도 살기 힘들므로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진화론의 영향으로요.


종교는 반대로 영혼불멸을 주장합니다만 그 역시 사망지향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일단은 죽어야 천당이든 윤회이든 내세가 있는 것이니까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히브리 9:27)라는 말씀은 본래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담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을 의미하죠. 당연히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죠.


게다가


사람들 가운데는, ‘사람의 아들’이 그의 왕국에 오는 것을 먼저 볼 때까지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을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마태 16:28)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도 있죠. 지금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인정하지 않는 왕국이 설립되어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무시는 이상할 정도로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죽음이 없어진다는 것과 영생에 대해 그렇게 자주 말하는데도 실제적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죠.


영원히 멸망되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이나 둘째 사망이란 표현도 여러 번 언급되어 있죠.


부활의 가능성이 없는 죽음을 의미하며 지금 사람들이 주로 겪을 일입니다.


오늘은 2025년 6월 30일입니다. 오늘 살아있는 사람은 80억 정도 되죠. 매일 10만 이상은 죽습니다. 지금까지 300억 정도가 죽었습니다.


세상이 이대로 가더라도 100년 정도 후이면 그 80억도 대부분 없어집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까?


요한 1서 1,2절입니다.

시초부터 있었고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고 우리가 지켜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곧 생명의 말씀에 관해 여러분에게 씁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보았기에 여러분에게 증언하며 알립니다. 그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요한은 지금 부활되어 영생의 일부를 누리고 있습니다. 영적인 몸으로요.


인간의 생명은 시초부터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의식이라는 것에는 영원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전도서 3:11 : 그들의 마음에 영원이라는 개념을 넣어 두셨다.)


그러나 조건부였습니다. 에덴에는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생이 보장된다는 것이죠.


모든 피조물은 그런 식의 조건하에 있습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이죠. 한 영적 피조물은 이런 조건에 불만을 품고 반역하였습니다. 그런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죠. 많은 천사들도 이에 가담하였죠.


지금의 99.9% 정도의 인간들도 이에 가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낙원과 같은 상태라면 그런 반역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세상 자체가 그러한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100살도 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죠. 그나마 여러 우환에 시달리다가 죽게 되죠. 인간들은 서로 으르렁거리며 짐승처럼 싸웁니다.


정상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갚은 탄식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만 생존하게 되죠.


모든 혐오스러운 일 때문에 한숨짓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여라.”(에스겔 9:4)


이처럼 이마에 표를 받은 사람만 생존하게 됩니다. 방주에 탄 사람만 생존하였듯이요.


성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게 40억부 이상 배부되어 있죠.


그러나 그 내용은 기독교인들이 선봉에 서서 가장 무시하죠. 교리 자체가 그런 것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한심한 세상의 주된 일부이죠. 그들 가운데 이마에 표 받을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표 받을 사람이면 기독교에 속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살아야 사람입니다. 죽어 없어질 존재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살기가 죽는 것보다 더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토록 강하게 거절하는 것입니까?


스스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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