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은 없다
인간의 이상, 이상형을 어느 정도 근접하게 소설이나 드라마를 통해 펼칠 수는 있습니다.
대장금을 보면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그 연출은 여러 면을 고려하여 최상으로 하였을 것입니다. 작가 및 연출가는 인간 의식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 그것을 영상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고전사극은 언어가 정선되어 있습니다. 속어, 비어, 은어 및 소위 금기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선역이건 악역이건 캐릭터는 단순 선명합니다. 생생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집중적입니다.
남녀 주인공이나 조연들은 인간성에 대한 이상이 잘 반영, 미화되어 연출됩니다. 감동을 받을 수 있게요. 잘 정련되어 있죠.
사실 전쟁영화나 무협, 서부영화에서도 구역질 나게 하는 장면들은 생략됩니다. 죽는 장면도 혐오스럽지 않게 매끄럽게 처리하죠. 실상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언어도 모범적인 언어가 구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한요.
영상 제작 목적과 배치되는 장면이나 심의에 걸릴 장면들은 철저히 배제되죠.
인간의 언행의 실상은 그러하지 않죠.
그러나 파격적이고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이고 기만적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사기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뉴스가 아니니까요.
영상에는 언짢게 하거나 지루하게 할 수 있는 실제 상황은 다 생략되어 있죠. 만화영화나 그림에도 외모상의 결함들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분장도 최상으로 하여 결함들이 감추어져 있죠.
대장금에도 남녀 간의 접촉에 성적 불순함은 소위 응큼함은 조금도 깃들이지 않습니다. 오직 순수하게 묘사됩니다. 그것이 정성적인 인간관계이죠.
삶의 실제 현장에는 언짢게 하는 면면들이 쉽게 포착이 되죠. 드라마의 악역일지라도 그 언행의 연출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간명함과 나름의 순수성을 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영상에는 전혀 안 나오지만 성기를 꺼내 놓고 대소변을 보고 흔들어 털거나 코딱지를 후비거나 가래침을 뱉는 장면에 비유되는 면면들이 일상적으로 노출이 되죠.
전도서 7장 28절입니다.
내가 계속 찾던 것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천 명 중에서 남자는 하나를 찾아냈지만, 여자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
인간 같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약하여 결론을 내리면 현실에서 정상적인 인간성을 지닌 여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남자도 예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인간이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29절입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뿐이니, 참하느님께서 인간들을 올바로 만드셨지만 그들이 여러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는 것이다.”
인격적인 면에서 인간의 추함과 허접함, 비루함, 간사함, 이기적임 등등은 그 원인이 창조주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들은 그나마 상상으로 상황에 적합한 언사나 표정, 행동을 고안하여 배우들에게 그렇게 하게 시키죠. 배우들도 잘 소화해 내죠. 인간에게 실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말해줍니다.
대장금의 시청률은 이란에서 90%, 스리랑카에서는 99%였다고 합니다.
인간이 잠재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욕(理想慾)을 충족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순수하고 온전한 그런 캐릭터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자체가 인간의 불완전한 머릿속에 꾸며낸 불완전한 것이라도요.
드라마보다 음악에서 더 리얼하고 간명할 수 있죠. 연출 시간도 몇 분에 불과하고요. 어떤 이상을 저비용으로 극명하고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죠. 다른 현실적인 모든 것은 눈감에 버리고 그 노래에서 연출된 이미지만으로 순수하게 상상으로 꾸며 그 가수의 음악적 영혼만을 그리게 될 때 사랑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인간다운 인간이란 존재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 준비는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모두가 실제로 그러한 인간 사회에 살게 되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