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성적 자유

by 법칙전달자

성적 자유


어떤 사람은 이 표현을 보고 전통적인 구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소위 성해방이라는 것을 연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극단적으로 그 반대의 개념입니다.


부도덕성이 조금이라도 깃든 성적 충동이나 욕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 호기심을 갖지 않는 것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 쪽으로 전혀 정신이 쏠리지 않는 자유를 의미하죠.


수 십 년 전에 한국에 숫총각동아리가 있었습니다. 그 동아리의 회원이 되려면 비뇨기과에 들려 자위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어야 하였죠. 남자들의 97% 여성들의 90% 이상이 경험을 한다는 것이 수음인데 그나마 3% 가까이는 그런 경험도 없다는 것이니 회원자격이 되는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것이죠.


18,9세가 되면서 뇌의 60% 정도까지 성호르몬에 지배된다고 하니 청소년기의 성애 대한 호기삼과 욕망이 강렬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중학교 1, 2학년 때쯤이면 첫 몽정을 경험하는데 소변이 아닌 것으로 팬티가 흠뻑 젖어있어 당황스러운데 뭔지 잘 몰라 엄마한테 보고를 하게 되기도 하죠.


그런데 변태, 도착, 비정상이 일반화된 오늘날의 성풍토에서 정상적인 성의식을 갖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적 취향이 네 가지: 이성애자, 양성애자, 동성애자, 무성애자가 있다는 식의 분석을 내놓는 것입니다.


성병 같은 위생적인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어떤 성적행위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하기도 하죠.


법적인 대응에도 일관성이 없죠. 성매매는 불법화하고 간통죄라는 것은 완화시키거나 음란물은 불법화하면서 동성에는 합법화하기도 하는 것이죠. 성적 부도덕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엄하게 추궁하여 사회에서 매장되는 경우가 있는 경우가 있죠. 드러나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요.


성의식이나 성개념이 정함이 없는 것이죠. 다른 법처럼 지역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달라져 온 것이죠. 성문화도 지역마다 크게 다르죠, 일본은 매우 개방적이라고 하죠, 이슬람권은 아직도 매우 폐쇄적이라고 하죠,


한 영화에 임종 전의 한 승려가 여신도에게 알몸을 보여 달라고 부탁을 하죠.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죽기 전에 한 번 보고 싶다는 것이죠. 알몸을 노출시키는 경우 니체주의자들 모임에는 의무적이죠. 동료이성의 알몸을 특별한 시각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대중목욕탕의 욕조에는 팬티라도 입고 들어가면 욕을 먹죠. 그러나 지금같이 무더운 날이라도 팬티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죠. 알몸이면 당장 신고 되어 잡혀가죠.


누드 패션소라는 것도 있는데 자주 보면 이성의 성기라도 전혀 호기심이 생기지 않게 되죠.


원래 100년 전만 하더라도 동서양의 모든 지역에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몸 전체를 두리뭉실하게 감싸는 옷을 입었죠. 흑백 영화에서 종아리가 드러나는 차림만 나와도 문란하다고 신랄하게 비난받았죠.


몇십 년 전 드라마에도 며느리가 바지를 입는다고 팔짝 뛰는 시아버지가 있었죠. 어떻게 여자가 갈라진 옷을 입느냐는 것이죠. 남녀유별, 남녀 7세 부동석이죠. 짧은 세월 안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세계적으로는 극과 극이 혼재하고 있죠.


성기와 관련에서도 상황에 따라 극단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드러내서는 안 되는 수치스러운 부위, 치부인 것이죠. 이렇게 된 것은 원죄와 관련이 있어 비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체의 다른 부위와 특별히 다르게 느끼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가장 강력하게 일으키는 곳이죠. 보고 싶어 견디지 못하게 하는 곳이죠. 성적 욕망을 가장 강하게 일으키는 곳이기도 하죠.


본론에 이르면 성도덕의 표준도 역시 창조주가 세우는 것입니다. 혼전, 혼외성관계, 수간, 동성에 근찬상간 거의 모두 사형죄였죠.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범죄였죠.(마태 5:28) 젊은 여자라면 일절 순수하게 친자매처럼 생각하여야 하였죠.(디모데 전서 5:2)


물론 인간 성의 공동 창조자로서의 예수는 이점에 있어서도 완전한 본이 되시죠. 당연히 인간 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죠.


그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은 어떻게든 예수를 고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거짓증인이라도 서슴지 않고 동원하였죠.


예수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였습니다. “당신 막달라마리아하고 요단강 강변을 팔짱 끼고 거닐다가 숲으로 들어갔다면서? 왜 그런 건데?” 하고 거짓증인을 내세워 고발할 수도 있었죠. 그런데 씨도 먹히지 않을 것이어서 조금도 염두를 내지 못했죠. 예수는 여인과 일대일로 장시간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여신도들과도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성적으로 불순한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한 분위기였습니다.


사도바울도 비슷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같은 다른 많은 사도들과 달리 독신이었습니다. 그래도 인간 사이의 성문제를 현실적이고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성과 관련하여 실용적이 지침을 제공하기도 하였죠.


이제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과 과부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나처럼 그냥 지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자제할 수 없다면 결혼하십시오. 정욕으로 타오르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고전 7:8,9)


또한 무성애자가 있다고 하는데 이를 연상케 하는 말씀을 예수께서 하신 적이 있죠.


제자들이 그분에게 말하였다. “아내에 대한 남자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결혼은 권할 만한 일은 아니겠습니다.”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직 선물을 받은 사람들만 그렇게 합니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고자도 있고, 사람에 의해서 고자가 된 고자도 있으며, 하늘 왕국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고자도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십시오.”(마태 19:10~12)


선천적으로 성적 취향이 약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다는 것이죠.


성에서 자유로우려면 예수처럼 초월자가 되든지 온당치 못한 호기심이나 욕망이 갈등이 생기게 하거나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생기지 않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나 오늘날처럼 부당한 성적 욕망을 자극시키거나 고조시키는 것들이 넘쳐흐르는 환경에서 그렇게 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성의식을 갖게 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성적인 면에서 예수처럼 될 필요가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왕국의 성교육마련에 의해서요.


그래서 또 하나의 더러움과 어두움에서 벗어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눈과 손이 성에 비천하게 속박되어 있는 인간의 처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자살까지 하겠습니까?


이성동료인간들과는 순수한 오누이와 같은 인간관계를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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