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멀게 하는 것
인생길은 결코 뜻대로 가지지 않습니다.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죠. 뛰고 날고 하는 사람들이 운영한다고 하지만요.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그런데 눈이 있다면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눈이 없다니 무슨 소리야?"라고 할지 모르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중 그분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그분에게 “우리도 눈이 멀었다는 말이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눈먼 사람이었다면 죄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지금 ‘우리는 본다.’고 말하니 여러분의 죄가 그대로 있습니다.”(요한 7:39,41)
예수께서는 눈이 있다는 사람들을 맹인으로 선언하셨죠. 그런 취지의 말은 여러 군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대인의식의 본질은 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의식’ 자체가 그 본질이 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열, 대립, 경쟁 모두가 ‘남의식’ 즉 미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죠.
인간은 사실 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9:1ㄴ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앞서 있었던 사랑과 미움을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 미움이 있다는 것도 모르며 인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르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정치 싸움을 하는 와중에 최고 통치자도 교도소에 가는 경우가 허다하죠. 명백히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죠.
서로 사랑하는 사람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죠. 경쟁이나 승부를 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미움의 발로입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고 어둠 속을 걷고 있으며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2:9~11)
미움이 있는 사람은 눈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하는 좋은 소식이 베일로 가려져 있다면, 그것은 멸망으로 나아가는 자들 가운데서 베일로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서 이 세상 제도의 신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정신을 눈멀게 하여, 하느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에 관한 영광스러운 좋은 소식의 빛이 비치지 못하게 해 왔습니다.(고후 4:3,4)
이와 같은 이유에서도 사람들은 눈멀어 있죠. 자신의 내면이 미움으로 지배되어 있다는 것도 보지 못하죠. 길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곳에 가 있게 되고 원하지 않은 상태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맹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죠.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정하게 되면 급반전이 될 수 있습니다. 눈이 훤하게 밝아지게 될 수 있습니다.
눈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