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두려움
증오를 자신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주고 방해를 한 대상에게 자연스럽고 정당하게 갖게 되는 감정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면 증오라는 것은 항상 그것을 갖게 한 원인보다 더 나쁘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증오’라고 하는 것 자체는 일종의 영적 사물입니다. 그 본성을 인간이 정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앞서 있었던 사랑과 미움을 알지 못한다.(전도 9:1ㄴ)
두려움 역시 자신을 방해하거나 고통이나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이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두려움이나 미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대상의 행위에 부당한 것이라는 전제를 설정하는 것인데 이 역시 자의적일 수 있죠.
두려움은 보통 부정적 감정, 증오는 악한 감정으로 구분됩니다. 그러나 두려움에는 상대를 불쾌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합당한 것도 있습니다.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두려움이 있고 병적인 두려움 있습니다.
증오도 악이나 부도덕, 파렴치, 불법, 이기심, 탐욕, 야심 등등과 같은 것에 대해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선한 증오와 악한 증오가 있는 것이죠.
두려움이나 증오 모두 사랑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사용됩니다. 방향이 다른 것이죠.
관건은 자기중심적이냐 원칙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감히 나에게 피해를 주었어? 날 모독해? 날 방해한단 말이지? 그럼 너는 원수야. 증오, 적의의 대상이야!” 이 경우의 분노와 증오는 악한 것이 되는 것이죠.
사람들은 증오를 정당화하고 생명보다 중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죠.
상대의 행위가 부당한 경우에도 증오는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는 용서하고 돕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여야죠.
그러나 어떤 대상이 자신에게 전혀 아무런 손해를 끼치거나 고통을 주지 않은 경우에도 그를 죽여 없애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큰 은혜를 끼친 사람인 경우라 할 지라도요. 심지어 그가 자기 가족이라 할 지라도요.
그가 이제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칼을 옆에 차라. 진영의 문에서 문으로 오고 가면서 각자 자기 형제와 각자 자기 동료와 각자 자기의 절친한 친지를 죽여라.’” 그래서 레위 자손이 모세가 말한 대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백성 중에서 약 삼천 명이 쓰러졌다.(출애굽 32:28.29)
자기 집안사람이 원수가 될 것입니다. (마태 10:36)
사람들에게는 법칙을 거스른다는 것에 대한 인식도 그러므로 당연히 두려움도 미움도 없습니다. 부도덕에 대한 합당한 증오를 가진 사람을 찾아볼 수 없죠. 그게 눈앞의 쾌락이나 이득을 가져오고 들키지 않을 것 같거나 들키더라도 사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으면 그것의 불법성이나 부도덕성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미 양심이 없는, 이성이 없는, 건전한 사고력을 상실한 짐승이 되었거든요.
하느님을 불쾌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전혀 없죠.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이미 악을 선이라 하며 악을 사랑한 지가 오래되었죠.
예수 당시보다 그러한 사람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전하는 소식이 진리이어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소식을 거절하였습니다. 당연히 정치적, 종교적 기득권자들이 그렇게 하였죠. 그것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것을 예수가 방해하는 것이라 생각했죠. 손해를 끼치는 인물이라 여겼습니다.
예수가 신들린 자로서 부당하게 근거도 없이 그렇게 한다고 모함하고 몰아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공연히 적개심과 미움을 드러내었죠.
사람들은 그러한 범죄적인, 병적인 두려움을 거의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합당한 경건한 두려움이라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거짓과 악에 대한 증오라는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활용하여 쾌락이나 이들을 취하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악한 증오를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죽이더라도 증오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죠.
오히려 그들 모두는 창조에 대한 적의의 대상입니다. 창조주의 원수이죠.
그들에 대해 오래전에 정해진 심판은 지체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멸망은 잠자고 있지 않습니다.(베후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