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도
AI, 챗봇, 고성능정찰위성, 딥페이크...... 결국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해낼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럴 가능성이 있게 만든 것이 창조주이죠. 어떤 면에서 고대인들이 더 유능했죠.
“보아라! 그들이 한 백성이고 언어가 하나이므로 이런 일을 시작했구나. 이제는 그들이 하려고만 하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겠다.(창 11:6 )
4,000년 전쯤이죠. 홍수로 다시 멸망시킬 수는 없었죠.
창조주의 이름 ‘여호와’는 ‘되게 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형상을 닮은 자유의지자의 창조가 되게 하였죠. 그런 존재를 만든 목적이 궁극적으로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이 되게 하실 수 있죠.
자유의지를 주었으므로 그에 따라 인간이 하는 일들을 제지하지는 않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나 동생을 죽이는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죠. 그러나 그 행동에 따른 대응은 하셨습니다.
인간은 멸망에 합당한 일을 하였으므로 대응이 필요하였습니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그들이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
언어를 혼잡케 하는 방법으로 대응하였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못할 일이 없어 보이는 그 능력으로 지구를 수 십 번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였죠. 그리고 사용하겠다고 서로 위협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구를 낙원으로 개척하라고 준, 무엇이든 하지 못할 것이 없어 보이는 능력을 왜 그렇게 사용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서로 사랑으로 연합된 공동창조자가 되어 이미 지구를 수 십 번도 낙원으로 만들었어야죠.
죽어 마땅함만 확립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영적 낙원을 형성한 사람들, 비유적 방주를 타고 있는 사람들만 생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