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by 법칙전달자

하물며


인간이 창조의 법칙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행불행과 생사가 그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법칙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면 크게 축복된 결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인간들이 만든 법에 대해서 어떻게든 법망을 피해, 취한 어떤 이득이 그 부당성으로 인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모색하죠.


법을 고려는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창조의 법은 비교도 안 되게 엄격합니다. 대개 법은 주로 처벌과 관련되어 연상됩니다. 죄와 벌 모두 부정적인 개념이죠. 법이 규정하고 집행합니다.


인간의 법이 그러함과는 달리 자연의 법. 창조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과법칙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주로 생각하지만 인간의 의식이 두려움에 찌들어 있는 것이 원인이기도 하죠. 늘 죄를 짓고 살고 있어 그 점이 문책받아 고통으로, 벌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죠.

인간의 자유의지, 자유의 법칙이 제1순위의 법칙입니다. 다른 모든 자연의 법칙도 인간이 존재하여야지만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당연히 1순위가 됩니다.

‘자연의 법칙’의 정의의 핵심은 ‘인간의 행동의 결과를 관장한다.’는 것입니다.

행동의 과정은 제지받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어떤 결과가 예상이 된다 하더라도요.

인간이 서로 간에 제지하는 것은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지만 그것도 자유이지요.

결론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 모든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와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행동은 제지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고한 아벨이 죽게 되는 결과가 있어도 가인의 죽이는 행동은 제지받지 않았죠.


911 테러도 히틀러의 학살도 그러하였죠.

예수의 죽음을 의미하였지만 동가상응의 처사, 대속은 진행되었습니다.

행동도 그러하다면 생각은 더욱더 자유롭죠. 그런데 어떤 비극적은 결과가 예상되어도 창조주도 그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면 마귀는 더욱더 그러하죠.


이점과 관련하여 하고자 하는 말은 인간이 다른 무엇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고통치권자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그랬다는 변명도요. 참작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최종결론은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법칙의 적용의 엄격함보다 행복과 생명을 가져오는 그 법칙의 적용이 더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이라도 진리를 선택하면 이전의 모든 그릇된 행위의 결과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죄도 대속으로 씻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이라도 자기가 지은 모든 죄에서 돌아서서 실제로 나의 모든 법규를 지키고 공의와 의를 행한다면, 그는 반드시 계속 살 것이다.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범법 행위—그것들이 그에게 불리하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행한 의 때문에 계속 살 것이다.’

‘내가 악인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이다. ‘그가 자기의 길에서 돌아서서 계속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느냐?’(에스겔 18 :21~23)


성서에서 산다는 것은 영생을 의미합니다.


죽는 것보다 영생이 더 쉽습니다. 창조의 법칙입니다.


그 쉬운 길을 고집스럽게 거절하여 임하게 되는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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