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신음
성서는 인간의 몸을 집, 천막, 건물 등에 비유합니다. 성전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원래는 그것 때문에 신음하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몸 가운데 오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중에서 인간의 시각과 청각만을 고등 감각기관이라고 합니다. 사상을 표현한 말이나 글을 듣고 보고 하는 경우에 고등감각기관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 것을 듣고 보는 경우는 일반감각기관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몸에는 인간과 같은 물질적인 몸이 있고 천사와 같은 영적인 몸이 있습니다.
물질로 된 감각세포들이 있죠. 미각이나 촉각을 이루고 있는 것들도 물질로 이루어져 있죠. 아마 그런 것들은 영적인 몸으로는 직접 느끼지는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속에 들어가면 뜨거운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목숨도 일게 될 수 있죠. 그러나 천사에게는 두 가지 현상 모두 발생되지 않을 수 있죠.
인간은 몸으로 인해 신음소리를 내야 하는 고통들을 겪게 되기도 하죠. 그러나 먹는 즐거움, 성적 쾌락 등도 몸을 통해 느끼죠. 영적은 몸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 여자들과 성관계를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듣고 보는 것은 인간의 몸이 되지 않고도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있는 우리의 집 곧 이 천막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건물을 얻게 될 것임을 압니다. 그것은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이 집에서 신음하고 있으며, 하늘에서 오는 우리의 집을 입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그것을 입으면 벌거벗은 채로 발견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 천막에 있는 우리는 짓눌려 신음합니다. 이 천막을 벗어 버리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입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죽어 없어질 것이 생명에 삼켜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오게 될 것의 증표로 우리에게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확신에 차 있습니다. 우리가 몸 안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떠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걷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더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거하든지 그분을 떠나 있든지, 그분이 받아들이실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자기 몸 안에 거하는 동안 한 일에 따라 보응을 받게 됩니다.(고후 5:1~10)
천사들도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고 예수는 영적인 몸으로 있다가 온전한 인간이 몸이 되어 33년 반 동안 있다가 죽은 후에는 다시 온전한 영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을 정해진 수치의 사람들은 죽어서 영적인 몸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통이 수반되고 여러 제한이 있는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것이죠.
그들은 영적인 몸이 되면 천사보다 높은 지위에 있게 되며 육을 가진 인간에 대해서는 천 년간 통치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통치하는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의 육체를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함이죠. 신음을 하지 않게 되는 상태요. 단지 질병과 노쇠뿐 아니라 인간이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표준에서 이탈해서 생기게 된 모든 우환과 고통에서도요. 모든 사회적, 심리적 악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포함되죠.(계시 21:3,4)
인간이 물질적 몸이 실패작이어서가 아니라 그 몸에 대한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부 인간들이 영적인 몸을 입게 되죠.(고전 15 :35~57)
곧 절대다수의 인간은 영원히 소멸됩니다. 스스로 그런 악을 자초하는 것이죠. 굳이 다른 죄악들을 열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인간들에게 죄의식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그들에겐 영적, 도덕적 감각이 실종된 상태이죠.
욕도 영원한 멸망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청소년의 96% 이상이 욕을 한다고 하죠. 물론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고 문화화, 인격화되어 있죠. (마태 5:22, 고전 5;11, 6:10)
그 하나만으로도 죽어 영원히 소멸되는 것이 지극히 마땅합니다. 인간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이성 없는 동물과 같아서, 자기들이 모르는 것들을 모욕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파괴적인 행로로 인해 멸망을 당할 것이며(베후 2;12)
욕은 물론 언어적인 폭력이라 할 수 있는 파괴적인 행로입니다.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이죠.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 보응은 피할 수 없습니다. 너무 역겨워 우주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고후 5: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