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략과 권유
인간은 대개 100살도 못 삽니다. 아기인 상태에서 죽는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죽는 것입니다. 인간들끼리의 비교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죠.
제대로 알아듣는 말도 거의 없습니다. 나름대로 학문적 용어를 구사하며 뭔가 설명하려 하지만 옹알이 수준입니다. 인간의 주제넘음은 극에 달해 있죠. 살 가치가 있나 하며 경멸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은 부당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한글개역판에 ‘권유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어원적 의미는 ‘속이다’라고 합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를 속이시니 우리가 속는다는 것이죠.
아이가 엄마에게 “엄마 나는 어디서 생겼어?”라고 물었을 때 “응, 다리 밑에서 주었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다리에 이중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가랑이 사이에서 나왔음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죠.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설명해주어야 했기에 그런 설명이 나오는 것이죠, 거짓말성이 있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든지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든지 하는 표현이 성서에 있는 것은 속이는 것이긴 하지만 그 당시 인간이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여야 하였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최첨단 학문적 용어로 설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하는 것은 가당치 않습니다.
100년 후의 생긴 학문적 용어로 뭔가 설명한 글을 오늘날 본다고 하면 가장 고명한 학자도 까막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처참할 정도로 근시안적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인식이 반영되지 않은 주장은 사실 역겹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 교만과 주제넘음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왕에 쫓겨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도망한 적이 있는데 적대국인 팔레스타인의 한 왕에게 몸을 의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왕은 다윗을 영웅이라 생각하여 받아 주었는데 그 측근들은 다윗이 위험인물이기 때문에 그를 죽어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왕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윗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이 정보를 전달받은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왕은 안심하고 돌이가 그에게 조언한 책사들을 오히려 책망하였습니다.
성서에는 창조주의 옹호자들의 이와 같이 속이는 행동들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는데 소위 신권적 책략으로 평가되는 것입니다.
필요에 따라 창조주도 속이시는데 그 옹호자가 필요한 경우 책략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인간들은 속이는 것이 습관화, 인격화되어 있죠.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100번을 속이면서 상대가 한 번 속이는 것 같다고 해서 극렬하게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 오늘날 뒤틀어진 인간의 모습입니다.
창조주의 말씀을 그런 식으로 거짓으로 단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죠. 기독교가 그 선봉입니다. 교황을 비롯하여 개 같은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은 전혀 예외 없이 그러합니다. 참으로 역겨운 존재들이죠.
저는 전달자로서 단지 창조주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창조주의 말씀을 있을 수 없는 거짓으로 단정하고 1,000만을 제외하고 더 이상 거의 아무도 방주를 타려 하지 않지만 곧 방주의 문은 닫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