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복합
자막이 있는 음악영상을 시청한다면 시청각을 모두 일반 감각기관과 고등감각기관으로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등감각기관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죠. 글을 보거나 말을 들을 때 사용되는 것입니다. 점자를 읽을 때는 촉각도 그렇게 사용되죠.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은 상대의 시청각의 고등감각기관으로서의 사용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일반감각기관으로서의 시력이나 청력이 약한 사람이 있죠. 아예 0인 사람도 있습니다. 안경이나 렌즈, 보청기를 사용하여 보완합니다만 0인 사람은 그럴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고등감각기관으로서의 기능입니다. 지성, 이성과 각각 관련되어 있죠. 언어적인(지성적인) 이해와 영적인 이해는 전혀 별개입니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였다.”는 표현에 대해 언어적인 이해는 대부분이 하지만 영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여 수용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대접받기를 원하는 대로 대접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의 의미는 이해할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하죠. 그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못하는 것이죠.
영적인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고등감각기관으로서의 한쪽이 작동불가인 것입니다. 들어도 보아도 깨달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이죠.
경치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경우에도 시청각의 영적인 고등감각기관이 작동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도 엄청나게 큰 유익이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참된 행복에 이르지 못하는 주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