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
여기 브런치에도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창작이죠. 사람들은 자신의 창작한 것 만든 것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되기도 하는 데 그것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보람이기도 합니다.
성서에는 창조주가 그분 홀로 창조한 유일한 것은 예수이며 다른 모든 것은 예수와 함께 창조했다고 합니다. 골로새 1:15,16)
그리고 그 창조된 것들은 각각 하느님을 위하여 혹은 예수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 2:10, 골로새 1:16)
인간은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 창조 혹은 창작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위해 집을 짓기도 하고 정원을 가꾸기도 합니다. 아마 로봇을 만들기도 하겠죠. 그리고 그 로봇이 자신을 위해 온갖 일을 하게 할 것입니다.
그 로봇이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도모한다면 아마 작동을 정지시킬지 모릅니다. 원격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죠. 어떤 영화들은 그런 점들을 다루기도 합니다. 모든 로봇들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죠.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반역을 하였거든요.
만물이 하느님이나 예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사나 인간들이 창조법칙에 순종하면서 행복하게 산다면 그분들을 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일부 상당수의 천사들은 반역한 상태이고 인간들도 그 반역에 동참한 상태이죠.
창조목적을 실패케 할 우려가 있으므로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하늘에 군대들이 있는 것이죠.
예수는 모든 면으로 피조물의 완벽한 본이 됩니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전능한 하느님과는 현저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죠. 그 차이가 예수와 창조주 사이는 더 작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는 그 반대입니다. 예수는 인간보다 현저히 능력이 뛰어나죠. 작품이 훌륭할수록 그 창작자의 재능은 더 뛰어난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 인간이 느끼는 것보다 창조주와의 격차를 더 크게 느꼈을 것입니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긴 것이죠.
예수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창조주를 위하여”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로봇을 만들었다면 그 로봇이 자신을 위할 것을 당연하게 기대할 것입니다. 로봇들끼리 싸워 서로를 파괴하는 것은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되죠.
우리 인간도 당연히 자신의 존재목적을 “창조주를 위하여”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여 행복하면 창조주가 기뻐하시죠. 그분을 위하는 것이 됩니다.
지구나 우주의 개척활동을 잘하는 것도 그러하고요. 파괴하는 것은 당연히 그분을 화나게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미워하는 것도요.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목적을 창조주를 위하는 것,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자신이 만든 로봇이 그 자신의 존재 목적을 ‘주인님을 위하여’라고 생각한다면 흐뭇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로봇이 지금 인간들처럼 그 모양으로 행동한다면 그걸 그냥 둘 로봇 주인이 있겠습니까?
위하는 것과 상충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히 창조주를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한 존재 목적은 ‘창조주를 위함’입니다.